사진 예술에 담은 소외된 산업사회

서울 종로구 화동 pkm 갤러리에서 유럽과 미국 출신의 세계적인 사진작가 12명의 작품 27점을 망라한 전시회를 개최한다. 지난 11일 오픈해 5월 10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환각의 공간`(Unreal Estate Opportunities)이라는 제목으로 열린다. 이번 사진전은 미국의 미술 평론가인 데이빗 리마넬리가 기획한 것으로 현대 산업산회의 한 단면을 담아낸다. `환각의 공간`이라는 전시 제목 자체가 상징적이고 은유적이다. 미국의 대표적 팝아티스트로서 미국의 자동차 문화를 작품의 코드로 표현해 온 에드워드 루샤가 1970년에 발간한 책의 제목인 `Real Estate Opportunities`에서 기획자가 영감을 얻어 온 것. 에드 루샤의 `Real Estate Opportunities`는 익명을 간직한 채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현대 자본주의 산업사회가 약속하는 수많은 기회를 암시하였지만, 데이빗 리마넬리의 `Unreal Estate Opportunities`는 기회가 넘치는 찬란한 약속의 땅이 싸구려 운을 거슬리지 못하고 비극적으로 변질될 수도 있음을 비유적으로 함축한다. 이번 전시는 도시와 외곽이라는 장소를 초월하여 편재해 있는 사회와 소외의 문제를 인식하고 산업사회의 냉혹한 현실과 때로는 절망적인 공상과 환각에 관한 비밀스런 이야기들을 담아낸다. 밀랍 인형들을 연출하여 연극의 한 장면을 구성한 듯한 히로시 스기모토의 작품은 너무나 고요한 나머지 스산함마저 느껴진다. 로버트 아담스는 미국의 황무지와 조립식 가옥에 의해 잠식당하는 미국 서부의 야생 지역을 단순하게 담아내고 있다. 그는 황량한 거리와 주차장 그리고 주택단지를 미묘한 빛의 차이를 이용하여 정교한 구성으로 잡아낸다. 리차드 프린스의 작업은 그가 현재 살고 있는 뉴욕의 알바니 카운티의 유기된 장소를 찍은 것들이다. 빈 창고와 주차장, 농구 링, 야외 수영장 등을 하나의 기호로 삼은 프린스는 얼굴 없는 건축물들의 노쇠함을 담으려고 노력한다. 토마스 스트루스는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대상을 올려다보는 시점으로 사진을 찍는다. 장소와 건축물을 통합시키는 그의 거대한 사진은 철저하게 사람들을 배제시켜 고요함과 적막함이 흐르는 속에서 하나의 `환영`을 떠올리게 한다. 기록적인 사진 전통을 자랑하는 독일의 베른트와 힐러 베허 부부는 독일의 번영을 일구어낸 산업 건축물을 작품에 보여주는 것을 지속적인 하나의 프로젝트로 삼고 있다. 래리 존슨은 파스텔 색조를 띤 공장을 절단한 채 한 쪽 가장자리의 윤곽선을 파괴시켜 기록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사진을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작품으로 재창조하였다.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인상적인 이미지들은 가파르게 경사진 시점에서 포착한 것이다. 기존의 카메라를 가지고는 작업이 불가능했을 이 작품은 디지털 기술의 최근 발달에 힘입어 가능해진 결과물이다. 호텔 로비를 동굴의 입구처럼 촬영한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현기증이 느껴지는 유쾌함을 맛볼 수 있다. 토마스 루프도 거스키처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직접적인 카메라 렌즈 촬영기법이라는 제한된 작업을 넘어 새롭게 구조를 거대하게 재편성하는 실험적 영역을 개척했다 이밖에 가브리엘 오로즈코, 스위스 출신의 피터 피쉴리와 데이빗 바이스, 미국 작가 크리스토퍼 윌리엄스, 마크 로우더 등의 작품이 출품된다. 이번 전시에는 1990년대 이후 사진이 현대 미술 주류로 부상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끌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현대 사진의 흐름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02)734-9467. <이용웅기자 yyo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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