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IB'로 뛴다] <3> 한국 IB의 모델 '맥쿼리'

틈새시장 공략 주효 '작은거인' 우뚝
글로벌IB와 경쟁 대신 인프라펀드 주력 '차별화'
10년간 평균 수익증가율 26% '백만장자 공장'
亞시장 공략위해 현지 금융기관과 제휴 잰걸음

‘틈새시장 공략으로 연평균 수익 26% 늘리는 작은 거인.’ 호주의 투자은행(IB) 맥쿼리(Macquarie)는 글로벌 IB시장의 ‘떠오르는 별’이다. 맥쿼리는 JP모건이나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와 같은 뉴욕 월가의 내로라 하는 투자은행에 비해서는 규모나 역사, 인지도에서는 뒤지지만 ‘나만의 분야에서 선두가된다’는 차별화된 전략으로 경쟁이 치열한 IB시장에서 단연 주목 받고 있다. 글로벌 IB들과 정면 승부에서 승산이 없다면 그들과는 다른 ‘틈새 분야’를 개척해서 1등이 된다는 맥쿼리의 전략은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앞두고 이제 막 IB개척에 나서고 있는 국내 증권사들에게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백만장자의 공장’ 맥쿼리= 호주의 경제중심 시드니에서도 주요 금융기관들이 밀집된 마틴 플레이스. 맥쿼리 본사는 마틴 플레이스 ‘1번지’에 우뚝 서있다. 여기서 걸어서 10분이 채 안되는 피트 스트리트와 킹 스트리트에는 제2, 제3의 맥쿼리 본사 사무실이 자리를 잡고 있다. 1969년 영국 종합상사의 자회사로 출발해 85년 ‘맥쿼리’라는 이름으로 호주에서 은행 인가를 받은 지 이제 겨우 21년. 늘어나는 사무실은 회사의 가파른 성장 속도를 그대로 반영하는 듯하다. 맥쿼리가 운용하는 자산은 지난 6월 말 현재 1,950억 호주달러(미화 1,500억 달러)로 1년새 45%나 늘었다. 순이익 규모는 지난 14년간 한 해도 빠짐없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해 이제 10억 호주달러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10년간 평균 증가율이 무려 26%에 달한다.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에서 높은 이익을 창출하는 능력 때문에 ‘백만장자의 공장’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가파른 이익 성장과 함께 10년 전만 해도 2,000명이 채 안되던 국내외 직원 수는 올 6월 현재 8,600명으로 불어났다. 맥쿼리그룹 관계자는 “시장이 나빠지면 곧바로 발을 빼는 다른 글로벌 투자은행들과 달리, 맥쿼리는 리스크가 적은 투자로 꾸준히 이익을 늘려왔다”며 “펀드 시장을 중심으로 지금까지와 같은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인프라펀드로 세계 시장 공략= 맥쿼리 사업을 구성하는 것은 투자은행, 자산관리, 여신, 파생상품 등 4개 분야로, 호주내에서는 모든 금융사업을 포괄적으로 취급한다. 이 가운데 주력업무인 M&Aㆍ기관 주식중개 등 투자은행 업무와 인프라펀드를 비롯한 자산관리 업무의 비중이 65%를 차지한다. 맥쿼리는 글로벌 시장에서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들과 직접적인 경쟁을 하는 대신 그들이 하지 않는 분야에서 1위가 되는 ‘우회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맥쿼리는 ‘인프라펀드’라는 신개념 IB사업에서 그 답을 찾아냈다. 인프라펀드란 투자자의 돈을 모아 각국의 도로나 공항, 항만 등 대규모 기간사업 건설에 투자하고 시설 운용에서 나오는 수익을 나눠 갖는 펀드. 광활한 대륙을 연결하는 도로와 공항 등 사회간접자본의 필요성이 절실했던 호주의 투자은행이기에 누구보다 강한 이점을 가질 수 있는 분야를 찾아낸 것이다. 호주에 입국하는 순간 발을 내딛게 되는 시드니공항과 에너지 공급회사, 라디오 방송국부터 미국 인디애나 고속도로, 영국 웨일즈&웨스트 유틸리티즈, 이탈리아 로마공항, 우리나라 인천 고속도로와 서울-춘천고속도로 등 맥쿼리가 투자한 인프라 펀드는 이미 100개를 넘어섰다. 최근에는 정부의 실버정책에 부응해 양로원 설립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맥쿼리는 400여명의 인력을 투자 자산 발굴부터 자산 운용 등 관련업무에 투입, 인프라펀드 시장 확대에 나서고 있다. 인프라펀드 분야에서 맥쿼리의 전문 인력 규모와 자본 동원력, 경험과 노하우 등은 글로벌 시장에서 단연 독보적이다. 맥쿼리은행 IR부문 관계자는 “인프라펀드는 안정적이면서도 꾸준히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맥쿼리의 가장 유망한 수익원”이라며 “전세계의 무한한 자산시장에서 맥쿼리는 아직 표면을 살짝 스친 것에 불과한 만큼, 본격적인 시장 개척은 이제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아시아 금융시장 공략 잰걸음= 유럽과 미국은 맥쿼리가 인프라펀드 투자와 관련해 종전부터 관심을 집중해 온 시장이다. 맥쿼리는 특히 미국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광활한 땅에 세워진 대부분의 기간시설이 현재는 주정부 소유지만, 누적되는 재정적자로 인해 점차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맥쿼리의 인프라펀드 가운데 호주 자산에 투자된 것은 전체의 25%에 불과하고 미국은 29%, 유럽ㆍ아프리카는 38%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아시아ㆍ태평양 지역은 전체의 8%에 그치는 상대적으로 작은 시장에 불과하다. 하지만 맥쿼리는 “아시아ㆍ태평양 지역에 대한 시각이 최근 수년 사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며 “이 지역이야말로 폭 넓은 IB업무에서 새롭게 관심을 끄는 차세대 핵심 시장”이라고 단언한다. 지난 2004년에는 ING의 아시아주식사업부문을 인수, 아시아 사업 확장의 플랫폼으로 육성하고 있다. 지난 1년간 아ㆍ태 지역에서 창출한 수입의 증가율은 94%로 맥쿼리의 지역별 사업부문 가운데서 가장 성장률이 높다. 유럽과 미주도 각각 47%, 34%의 성장률을 보였지만, 성장 속도로는 아시아의 절반 수준이다. 특히 언어와 문화 차이 때문에 지역 전문가들의 도움이 필요한 아시아 시장은 현지 금융기관과의 전략적 제휴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내에서는 국민은행과 신한금융그룹 등이 각각 IB와 파생상품 분야에서 맥쿼리와 손을 잡고 있고 일본 미즈호증권은 주식파생상품, 중국건설은행은 주택담보 증권화와 관련해 제휴를 맺는 등 주요국에서 다양한 제휴 형태로 금융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 존 워커 맥쿼리 코리아 회장 "한국시장 잠재력 풍부, 국내자본 신뢰 키워야" “맥쿼리의 경영철학은 ‘틀 속의 자유(Freedom within the boundary)’ 입니다. 엄격한 내부규정(컴플라이언스)을 지키는 범위에서라면 모든 직원들이 기업가정신을 발휘해 얼마든지 자유롭고 창의적인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지난 2000년부터 한국 내 맥쿼리 총사령관을 맡고 있는 존 워커 맥쿼리 코리아 회장은 “종종 맥쿼리 코리아나 맥쿼리그룹의 경영계획에 대한 질문을 받는데, 맥쿼리는 위에서 일방적으로 정하는 경영 플랜이 없다”며 “경영계획은 경영진이 책상 앞에서 정하는 것이 아니라, 각 분야 인력들이 가져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지금까지 맥쿼리 코리아가 이룬 성과 역시 인프라펀드 등을 중심으로 한 경영활동의 씨앗이 유기적으로 성장한 결과”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불과 6년 전 4~5명의 소수 인원으로 낯선 한국 시장에 뛰어든 맥쿼리 코리아는 현재 300여명의 인력을 갖춘 국내 최대의 외국계 투자은행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제로’에서 출발한 한국내 자산관리 규모는 현재 160억달러(15조원) 이상으로 불어났다. 이 같은 외형 성장에는 맥쿼리의 철저한 현지화 전략이 뒷받침이 됐다. 실제로 국내 시장에 진출한 상당수의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홍콩이나 싱가포르에서 영입한 소수 인력으로 운영되는 것과 달리, 맥쿼리 코리아는 90% 이상이 국내에서 채용된 인력. 앞으로의 계획도 지금까지의 장점을 잘 살리면서 젊고 활기찬 인재를 모으는 것이다. 워크 회장은 하반기부터는 에너지나 운송, 사회간접자본, 교육이나 병원시설 등에 투자하는 펀드 설립을 모색하면서, 인수합병(M&A) 시장에도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맥쿼리에게 있어 한국 시장은 ‘서커스 코끼리 위에 올라탄 발레리나’라고 그는 비유한다. 시장 규모는 중국(코끼리)과 비교할 수 없지만, 멀리 보며 균형을 잡는 것이 바로 아시아에서 한국시장이 갖는 의미라는 것. 정부가 추진중인 자본시장통합법에 대해 워커 회장은 “증권사와 운용사 등 각기 다른 서비스가 하나의 규제 하에 통합된다는 것은 고객이나 금융기관들에게도 큰 기회”라며 “새로운 경쟁력을 갖추게 될 금융업체들과 건전한 경쟁을 하는 것이 맥쿼리의 몫”이라고 말했다. 워커 회장은 “한국은 인재, 자본, 잠재력이 모두 풍부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 결여가 문제”라며 “월가 투자은행들의 방향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국내 증권사와 국내 자금에 대한 신뢰를 키우는 것이 한국 금융시장의 선결 과제”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