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경제, 포스트버블시대] <2> 무기잃은 FRB

[美경제, 포스트버블시대]무기잃은 FRB '약발' 안받는 금융시장 '쓸만한 카드' 마땅찮아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일본은행처럼 금융시장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3년전만 해도 앨런 그린스펀 의장은 금리라는 무서운 무기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입으로 금융정책(mouth policy)'을 운용했다. 그린스펀 의장은 지난 16ㆍ17일 상ㆍ하 양원 증언에서 미국 경제를 낙관적으로 전망했고,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그린스펀에 동조, 경제 낙관론을 폈다. 그러나 뉴욕 증시는 두 지도자의 말을 무시해버렸다. 그린스펀의 말이 먹히지 않은 것은 FRB가 지난해 과감한 금리인하를 단행했지만 경제가 살아나지 않고 있는데다 이젠 더 쓸 무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지난 2년간 정보통신(IT) 산업과 나스닥 증시의 침몰이 미국의 1차 거품 붕괴라면, 올들어 미국 기간산업 주식인 블루칩이 급락, 2차 거품 붕괴를 맞고 있다. 1차 거품 붕괴때 미국은 금리 정책을 주무기로 사용했지만, 실패했다. 2차 블루칩 붕괴를 맞아 미국은 달러 하락을 용인함으로써 제조업의 경쟁력 회복을 도모하고 있지만, 그 효과는 미지수다. 금리, 환율, 그 다음에 미국이 경제 회복을 위해 사용할 수단은 무엇인가. 혹자는 전쟁 가능성까지도 제시하고 있다. ▶ 디플레이션 우려 그린스펀 의장이 지난 15년 동안 FRB를 이끌면서 내세운 원칙은 '선제적 인플레이션 억제'였다. 6~9개월 전에 금리를 조절함으로써 인플레이션을 사전에 막는다는 원칙이었다. 그러나 임기를 2년 앞둔 그린스펀 의장은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선제적 디플레이션 정책'을 취하고 있는 듯 보여지고 있다. FRB 내부에서는 일본의 디플레이션에 대해 심도있는 연구와 검토가 이뤄지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주가와 달러 급락으로 금융자산 가치가 하락했기 때문에 미국 경제는 이제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FRB는 지난해 무려 11차례에 걸쳐 금리 인하를 단행하면서 은행간 콜금리를 6.5%에서 40년만에 최저인 1.75%로 끌어내렸다. FRB 내부에서조차 금리인하가 지나치다는 반론이 강하게 제기됐지만, 그린스펀 의장은 '보너스'로 1% 포인트 정도 더 내리는 과감한 조치를 단행했다. 올해초만 해도 경기가 살아나는 듯 보여 1% 포인트는 조만간 인상될 것으로 관측됐다. 하지만 이젠 금리를 더 내릴 것이라는 분석과 함께 금리 인상이 내년으로 넘어갔다는 전망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기업 부문에선 사실상 디플레이션 상태에 놓여있다. 경영인들은 가격을 인상할 기회를 상실했다고 푸념하고 있다. 유가와 임금 상승도 상품 가격을 올리는 요인이 되지 못하고, 달러 하락으로 수입원자재 가격이 올라도 최종 상품가격은 내리고 있다. 최종 수요가 살아나지 않고, 설비 과잉이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 은행은 건실하지만 일본은 90년대초 재할인율을 6%에서 0.5%까지 내렸지만, 은행부실이 누적되면서 유동성 함정에 빠졌다. 일본 은행들은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했다가 땅값 하락으로 부실에 빠진 것이다. 하지만 미국 은행들은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증시 하락이 금융시스템 위기로 치닫지 않을 것이라고 월가 이코노미스트들은 전망했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의 거품은 시가와 양태에서 차이가 있을 뿐, 거품은 꺼지는 법이다. 뉴욕 증시가 하락하면서 과거 대세 상승기의 선순환 과정이 이젠 악순환의 모순구조로 돌변하고 있다. 뉴욕=김인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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