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5,000억달러를 넘어섰던 러시아 외환보유액이 루블화 가치폭락(환율상승)을 막는 데 소진되면서 1년 만에 3,000억달러대로 급감했다. 이는 64개월 만의 최저 수준이다.
25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중앙은행은 자국 외환보유액이 지난 19일 현재 3,989억달러에 그쳐 1월 대비 22% 줄었다고 이날 밝혔다. 러시아 외환보유액이 4,000억달러를 밑돈 것은 2009년 8월 이후 처음이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서구권의 제재와 최근의 유가하락으로 루블화가 올 들어 급격히 평가절하되자 지난 1년 사이 1,000억달러가 넘는 보유외환을 쏟아부으며 수차례 외환시장 개입에 나섰다. 지난주에 루블 환율 방어에 소진된 비용만도 157억달러에 이를 정도다. 아울러 러시아 중앙은행은 자국의 통화경색 부작용을 감수하면서까지 기준금리 인상(10.5%→17.0%)을 단행하고 주요 국영기업들에 대해 강제 외환매각 조치를 내리는 등 극약처방까지 병행했다. 그 덕에 널뛰던 루블화는 이번주 들어 다소 진정됐다. 이달 중순 달러화에 연초 대비 최대 40%가량 폭락했던 루블화 가치가 이번주 들어 13% 반등한 것이다. 루블화 가치가 잠시 오르자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은 25일 의회에 출석해 "루블화의 위기는 끝났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당국의 인위적 조치에 따른 환율안정 효과가 길게 가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ING 모스크바지점의 드미트리 폴레보이 이코노미스트는 "(최근의 루블화 가치 상승은) 크렘린궁의 개입 때문"이라며 "현 저유가 기조에서 그 효과는 단기에 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모하메드 엘에리언 전 핌코 최고경영자(CEO)는 블룸버그TV에 출연해 "(러시아 외환보유액이) 당장에는 많아 보일 수 있지만 외채 변제나 자본유출 완화, 환율 안정 등 다양한 요구를 만족시키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며 "조만간 러시아의 신용은 '정크(투자부적격)' 단계에 들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최근 러시아 신용등급 전망에 '부정적 관찰 대상'이라는 낙인을 찍었다. 현재 정크 단계 바로 직전인 'BBB-'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러시아 신용등급이 더 떨어질 수 있음을 경고한 셈이다.
한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올해만큼은 긴 연휴를 보낼 여유가 없다"며 장관들에게 신년연휴를 반납하고 경제위기 해결을 위해 일할 것을 지시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