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칼럼/4월 6일] 자본주의 궤도 바뀌고 있을까

이경태(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원장)


이번 금융위기는 시장의 실패에서 비롯되었다. 물론 정부가 의당 했어야 하는 금융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서 정부실패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레이건 대통령 이래 30여년간 미국을 풍미한 신자유주의는 최소한의 금융감독이 최선이라고 설파하였고 그 가르침을 따라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분리를 규정한 글래스 스티걸(Glass-Steagal) 법의 철폐 등 규제축소가 지속되어 왔다. 그런데 월가는 자유의 과실을 만끽하면서도 위험관리는 소홀히 하여 위기를 자초하였으므로 이는 명백히 시장실패인 것이다. 지금 모든 정부는 시장실패가 남긴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서 진력하고 있다. 심각한 부전증을 앓고 있는 시장을 대체해서 경제의 전면에 나서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고장 난 자본주의시스템의 어디를 어떻게 수선해야 하는 지를 놓고 절치부심하고 있다. 지난해 9월 리먼 브러더스 부도 이후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정부 및 중앙은행들이 취한 조치들을 보면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종래의 통념을 뛰어 넘는 것이 많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부실금융기관에 대한 전면적인 구제이다. 상업은행은 물론 투자은행과 생명보험까지 망라하고 있고 그 수단도 유동성 공급은 물론 예금자 보호, 지급보증, 공적자금 투입과 국유화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고 있다. 또 자동차 등 실물기업에 대해서도 공공연하게 구제금융이 제공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이는 자유경쟁을 통한 적자생존이라는 자본주의의 근본원리를 훼손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중앙은행들도 은행의 은행이라는 전통적인 영역에서 벗어나서 민간기업에 대한 지급보증과 회사채 인수 등으로 시장에 직접 뛰어 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장기국채인수를 통해서 화폐를 직접 살포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앞으로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재무성증권을 직접 인수하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고, 만약 그렇게 되면 재정과 금융의 경계선이 무너지게 된다. 이 모든 탈통념적 조치들이 대공황이후 최악이라는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임시방편인지 아니면 자본주의의 괘도를 수정하는 변혁인지를 판가름하는 것은 아직은 시기상조이다. 그러나 위기극복 이후의 자본주의의 모습이 위기 이전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일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우선 거시경제정책운용에서는 케인즈적 수요관리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왜냐하면 당분간 세계경제는 인플레보다는 실업문제에 더욱 시달릴 것이기 때문이다. 위기 이전부터 세계 공산품 가격을 안정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하고 있었던 과잉생산문제는 위기를 거치면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 자동차 산업 등이 구조조정 대신 구제금융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중국은 물론 인도와 아프리카의 저렴한 노동력이 세계노동시장에 신규로 대거 유입되어 임금안정이 계속 될 것이다. 금융구제와 실물경기부양을 겨냥해서 시중에 풀린 막대한 규모의 유동성이 인플레의 잠재적 복병인 것은 사실이지만 부동산과 금융상품의 거품에 대한 강화된 경계심 때문에 투기적 수요에 대한 대출은 억제될 것이고 과잉유동성은 오히려 시장금리의 안정을 불러 올 것이다. 이번 위기를 계기로 해서 가장 큰 변화가 예상되는 분야는 시장에 대한 정부의 미시적 개입의 확대 가능성이다. 금융기관과 자동차산업에 대한 구제의 대가로 해당 정부는 경영책임자 교체와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등 이미 간섭의 손을 뻗치고 있는데 위기극복 이후에도 이러한 개입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번 위기를 계기로 해서 금융산업에 대한 규제가 강화될 것은 분명하며 문제산업에 대한 정부의 구제와 보호가 더욱 늘어날 수 있는 심리적 토양이 마련되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나아가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과 EU의 경기부양 내용을 보면 녹색산업 등에서 신성장동력을 찾으면서 정부지원을 병행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식품안전과 기후변화완화 등 공익을 위해서 기업활동에 대한 규제가 추가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의 역할이 강화되어 가는 바탕에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에 대한 불신과 경계심리가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고삐를 지나치게 죄다 보면 자본주의의 속성인 동물적인 기업가정신이 고사하고 경제성장이 정체에 빠지는 부작용을 피할 수 없다. 구체적으로 어느 분야에서 어떤 강도의 정부간섭이 필요한 지는 각국이 처한 현실을 십분 고려하여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 알립니다
이경태(62) 국제무역연구원 원장이 송현칼럼 고정필진으로 새로 참여합니다. 이 원장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조지 워싱턴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행정고시 14회로 재무부 이재국에서 관료 생활을 시작, 산업연구원 부원장,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표부 대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 등을 거쳐 현재 무역연구원 원장 등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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