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 작가의 ‘MEMORY OF WIND’ 展이 서울 팔판동 갤러리 도스에서 11월 6일(수)부터 11월 12일(화)까지 열린다.
바람이 부는 날의 풍경은 때론 형태를 잃어가는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킨다. 하나의 고정된 형상에 머무르지 않고 그 다음으로 변형의 단계를 거치는 시공간으로의 집중에서부터 정유정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시간차로 변하는 풍경 앞에서 작가는 과거의 잔여물과 미래의 전조(轉調)가 공존하는 현상을 발견한다. 그 현상에 관한 정보들을 수집하게 되는 과정에서 시각을 비롯한 인간이 느끼는 감각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게 되는데, 이는 ‘현장감(現場感)’이라는 결과물을 이끌어낸다.
작가의 포커스는 주인공이 아닌 다른 것들에 맞춰진다. 무의식적으로 지나치는 구석이나 그림자 같은 생략 가능한 요소들을 오히려 더 깊은 관심을 갖고 바라보는 것이다. 사소해도 결국은 존재하는 것들을 전부 인정하는 것이 작가만의 풍경을 관찰하는 방식인 셈이다. 그 이유로 작가는 풍경이 갖고 있는 생명력을 제시하는데, 이는 동시에 왜 풍경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기도 하다.
정유정에게 풍경이란 무대배경 같은 주변요소가 아닌 하나의 독립된 주체이다. 상호 교류가 가능한 존재로서 영감을 제공하고, 또 감정을 투영할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바쁜 현실에서 풍경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숨을 돌리는 은밀한 방공호로서의 기능과 동시에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생명의 유한성도 암시하는 이중적 면모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예고된 상실 앞에서 작가가 얻는 감정은 두려움이 아닌 역설적인 안도감이다. 이는 생명의 가장 확고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과도기적 시공간에서 시작과 끝의 혼재는 마찰을 일으키고, 그 양극의 틈에서 생겨나는 불꽃은 삶에 대한 의지라는 이름을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변화의 단편을 표현하기 위해 작가는 속도와 습도, 두 요소를 중심으로 작품을 구성한다. 가늠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다양한 정도의 수분을 머금은 풍경의 지층들은 그 농도에 따라 시공간의 여러 모습들을 표방하면서 하나의 가변적인 집합체를 만들어간다. 그렇게 생동하는 풍경에서 우리는 풍경과 인간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동행(同行)의 정의를 재해석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정유정의 풍경에는 찰나(刹那), 즉 수많은 생성과 소멸의 순간들이 숨겨져 있다. 예술이라는 창을 통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과거로의 회상과 현재의 가능성, 미래로 향하는 의지에 대한 메시지들이 하나씩 전해지는 경험이 될 수 있길 바란다.
문의 : 갤러리 도스 02-737-46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