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스타킹·하이힐 신고… 여장남자 체험기

■ 지구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
크리스티안 자이델 지음, 지식너머 펴냄


세상을 발칵 뒤집은 '그 실험'은 여성용 밴드 스타킹에서 시작됐다. 독일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저자는 어느 겨울날, 우연히 여성용 밴드 스타킹을 산다. 다양한 디자인과 색상, 여러 기능을 갖춘 남성 내복을 찾던 저자의 마음에 들어온 것은 안타깝게도 여성용 스타킹. 고민하던 그는 굳게 마음먹고 스타킹을 사기로 한다. 계산대를 지나면서 그는 상상한다. 과연 여자의 삶은 어떨까. 한 번쯤 여자로 살아보는 것도 흥미로운 경험이 아닐까. 1년에 걸친 평범한 남자의 여자 체험은 그렇게 시작됐다.

가짜 가슴을 달고 원피스를 사고 화장을 한 저자는 크리스티안(저자의 이름)이 아닌 크리스티아네가 되어 여장을 한 채 외출까지 감행한다. '발가락이 끔찍하게 아팠지만, 발걸음을 뗄 때마다 여유로운 세계로 한 걸음씩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실리콘의 따스함과 브레이지어 레이스의 부드러운 촉감이 좋았다.' 스타킹과 하이힐, 여성용 속옷, 손톱 손질과 메이크업, 여자들만의 수다 등 여자들에게 익숙한 것들을 남자인 저자가 처음 접하면서 느끼는 감정선은 꽤 흥미롭게 묘사돼 있다. 책은 남자가 여장을 했을 때 겪는 가벼운 해프닝만 소개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여성이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겪는 다양한 문제를 조명한다.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을 향한 야릇한 남성들의 시선과 불결한 손길을 비롯해 여자나 소수자·약자에게 쉽게 가해지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을 정면으로 드러낸다.

1년간의 흥미로운 실험 끝에 저자는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남자는 강하고 여자는 예민하고 연약하다.' 같은 고정관념이 남녀를 갈라놓는 것이지 사실 남녀 모두 강하기도 하고 연약하기도 하다는 것이다. 남자 역할, 여자 역할 구분 없이 한 인간으로서 자유롭고 진정한 '나'로 사는 게 중요하다는 게 결론이다.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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