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막대한 전쟁 비용과 경기 둔화에 따른 세수 부족으로 사상 최대의 재정 적자를 기록할 전망이고, 무역 적자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위험 수위로 규정한 국내총생산(GDP)의 4%를 넘어 5% 선에 이르고 있다. 80년대 공화당 정부 시절에 미국 경제의 병으로 지적됐던 쌍둥이 적자가 조지 W 부시 정부에서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재정 적자가 늘어나면 이자율이 상승하고,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 무역 적자가 커지면 심각한 외환 부족 현상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나 지금 미국 경제는 재정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도 이자율은 40년만에 최저를 기록하고, 안정적인 인플레이션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의 외환 보유액이 한국보다 훨씬 적은 800억 달러에 불과한데도 외환 부족이란 말이 전혀 거론되지 않고 있다. 거시 경제의 일반 이론이 미국에 적용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미국의 세계 지배력이다.
뉴욕 금융시장은 역사적으로 미국의 전쟁을 뒷받침하는 과정에서 발전했다. 뉴욕 월가의 방대한 자본 저수지는 독립 운동 자금을 시작으로 남북 전쟁, 1~2차 대전의 전쟁 비용, 80년대의 재정 적자를 소화해 냈다. 그 비용으로 미국은 전세계 국방비 총액의 50%가 넘는 어마어마한 군비를 조달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재정 적자는 연방정부가 국채(TB)로 전환하면 뉴욕 금융시장이 소화해 낼 것이다.
무역 적자는 달러의 세계 지배를 통해 해결하고 있다. 미국 밖에서 유통되는 달러는 미국 내에서 돌아다니는 달러의 2배에 달한다. 미국인들은 외국의 물건을 수입해서 이자를 물지 않고 푸른색 지폐(그린백)을 찍어 지불하면 된다. 한국은 96~97년에 연간 200억 달러의 무역 적자를 내다가 외환 위기를 겪었지만, 연간 4,000억~5,000억 달러의 무역 적자를 내는 미국은 외국 돈을 쌓아둘 필요가 없다.
미군이 바그다드를 함락한 후 사담 후세인 대통령 동상과 현지 통화를 폐기하고, 달러를 뿌렸다. 점령군으로서 후세인의 얼굴이 그려진 지폐가 돌아다니는 것을 보기 싫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하다. 진짜 이유는 군사력으로 정권을 교체했지만, 경제는 달러로 접수하겠다는 것이 아닐까.
달러 헤게머니와 뉴욕 월가의 금융시스템이 미국을 최대 군사대국으로 만들었고, 이른바 `팍스 아메리카나`의 재정적 힘이 되고 있는 것이다.
<뉴욕=김인영특파원 ink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