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도산법(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안)이 정부의 졸속ㆍ부실 추진으로 입법이 계속 미뤄지면서 효율적인 기업회생과 퇴출, 개인파산대책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24일 법무부와 대법원 등에 따르면 정부가 당초 이달부터 시행하려 했던 통합도산법의 국회통과가 늦춰지며 연내 통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대법원은 법 통과 이후에도 1년간 시행규칙을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실제 시행까지는 상당기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통합도산법 논란지속=지난 97년말 환란 직후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에 따라 정부는 효율적인 구조조정과 개인파산대책을 위해 파산법ㆍ회사정리법ㆍ화의법 등 도산3법의 통합을 추진해왔다. 98년부터 준비에 들어간 정부는 지난해 11월 시안을 마련, 법무부와 법제처 심의를 거쳐 올 2월 국회에 보내 이달부터 시행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졸속추진으로 국회통과가 보류된 데 이어 부실기업 구조조정의 키를 기존 경영진에 쥐어준 점과 신용불량자 300만 시대를 맞아 `샐러리맨과 자영업자 채무자중 5년 이내의 범위에서 성실하게 채무를 이행하면 나머지 빚을 면책한다`는 개인회생절차 신설, 조세채권 감면 불인정 문제 등에 대해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국회통과 왜 미뤄지고 있나=대법원이 최근 검토한 결과 총 652개 조항 중 1~20조항에서만 9건이 법리적으로 모순되거나 의미가 다르게 해석되는 등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법원 김형두 사법정책연구심의관은 “복잡하고 방대한 법안들을 급하게 통합한 결과 오류가 대거 발생했다”며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는 법 통과이후에도 1년의 규칙 제정기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근본적인 문제는 법정관리인 선임과 개인파산 문제 등 핵심쟁점에 대한 이해 당사자들간의 의견조율과 사회적 합의가 미비한 상태에서 추진됐다는 데 있다.
◇향후 대책은=법무부는 최근 대법원의 지적을 감안, 법령 보완작업을 벌여 연내 입법 추진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조정환 법무심의관은 “방대한 법령들을 통합하다 보니 오류가 발생했다”며 “국회 전문위원들과 법령을 고치고 있으나 골격은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 법안은 오락가락한 끝에 재계측의 입장을 반영해 법정관리인을 기존 경영진에 맡기기로 했지만 법원 등에서 `도덕적 해이`를 들어 반발하고 있다. 김재형 서울대 교수는 “부실 책임이 없는 능력 있는 3자에게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신설되는 개인회생제도와 관련, 금융감독원과 금융권은 “악덕 채무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하며 “개인워크아웃을 거쳐 개인회생제도로 넘어가게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참여연대 김남근 변호사는 “신용불량자의 10∼20%가 파산상태로 빨리 수습하지 않으면 사회적 비용이 급증할 것”이라며 “일본처럼 통합도산법에서 개인회생제도를 떼어내 우선 시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실기업의 조세채권(미납세금) 문제와 관련, 이현석 대한상의 상무는 “2,300억원의 한보철강 조세채권 문제가 인수합병(M&A)에 지장을 초래한 예에서 보듯 조세채권도 다른 채권과의 형평성 차원에서 감면돼야 한다”고 말했다.
<고광본기자 kbgo@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