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명의 '월가의 전설'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로 몰락한 대형 투자은행(IB) 베어스턴스의 앨런 그린버그(사진) 전 회장이 암 합병증으로 25일(현지시간) 숨졌다. 향년 86세.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의 손자인 그는 소형 채권판매 회사였던 베어스턴스를 미국 5위 IB로 키워내며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한 인물이다.
미주리대 재학 시절 친구가 유대인 냄새를 덜 풍기라고 지어준 별명인 '에이스(Ace)'처럼 그는 입지전적 인생을 살았다. 1949년 베어스턴스에 입사해 유전지역을 지도에 핀으로 꼽는 허드렛일로 시작했지만 곧 승승장구했다. 1978년 최고경영자(CEO) 취임 때 베어스턴스의 자산규모는 4,600만달러, 직원 수는 1,000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IB 부문 강화, 경쟁자보다 한발 앞선 전략을 앞세워 1993년 후계자에게 자리를 물려줄 때까지 불과 15년 만에 자산규모 18억달러, 직원 수 6,300명의 회사로 키워냈다.
특히 그린버그 전 회장은 독특한 개성을 앞세워 비정한 월가 이미지에 인간적 면모를 부여했고 갖가지 화젯거리도 만들어냈다. 그는 카드게임인 '브리지게임' 미 챔피언이자 숙련된 마술사, 시가 애호가였다. 또 퇴근 때 전등 끄기, 봉투 재활용 등을 회사 내규로 삼는 등 쓸데없는 낭비에 질색했다.
자신이 밑바닥에서 올라간 만큼 채용하고 싶은 직원으로는 가난하고(Poor) 똑똑하며(Smart) 부자가 되고 싶은(Desirous of riches) 이른바 'PSD 학위'가 있는 사람을 꼽았다. 베어스턴스 회장 시절에는 "자만과 자기만족은 우리 금융계에 위험하다"며 "베어스턴스 직원들에게서 향수 냄새가 나면 내가 먼저 주식을 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2008년 금융위기 때 60년간 몸담아온 베어스턴스가 JP모건체이스에 23억달러라는 헐값에 넘어가는 꼴을 지켜봐야 했다. 이후 그는 JP모건 명예부회장 직에 있으면서도 베어스턴스가 유동성 부족이라는 근거 없는 소문에 무너졌다며 후임자인 제임스 케인 전 회장의 바보 같은 대응력을 한탄하기도 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 겸 CEO는 이날 직원들에게 보내는 글에서 "그린버그 없는 미 금융산업은 상상하기 힘들다"며 "또 다른 '에이스'는 앞으로 결코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애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