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세번째 직장… 참담한 그녀의 속사정
[차기 정부, 이것만은 고치자] 약자 위에 군림하는 강성노조일자리 확대가 노사안정 기본… 대기업 노조 이기심 버려야거대노조, 더 많은 혜택 외치며 비정규직·중기 권익은 외면노사현안, 사회적 합의로 풀어야 파업 손실 악순환 막을 수 있어
맹준호기자 next@sed.co.kr
현대자동차의 1톤트럭 '포터'를 계약했던 자영업자 A씨는 요즘 속이 까맣게 타들어갈 지경이다. 하루하루 벌어먹고 살기조차 힘든 형편인데 무려 두달째 차가 출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A씨는 "수십차례 현대차 대리점에 문의했지만 노조파업 때문에 생산에 차질이 생겼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는 말만 돌아올 뿐"이라며 "우리 같은 서민들은 이런 경우 도대체 어디서 손해보상을 받을 수 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 같은 상황은 기아자동차의 소형트럭 '봉고'를 계약한 자영업자들도 마찬가지다. 포터와 봉고의 출고가 늦어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난 여름 3년 만에 발생한 현대차와 기아차 노조의 파업 때문이다. 파업 여파가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는 영세 자영업자를 벼랑 끝으로 몰고 있는 것이다.
◇거대사업장ㆍ거대노조 중심 사고를 탈피해야=소형 트럭은 장사를 하려는 영세 자영업자들이 선호하는 차종으로 인도지연은 곧 이들의 생계 문제로 이어진다.
이처럼 노사갈등 등 노동 문제는 단순히 회사 내부를 넘어 국민 실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어떻게 보면 자살ㆍ이혼ㆍ저출산 등 한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에도 노동 문제가 깔려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침해하는 노조의 행태는 비정규직 문제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전문대를 졸업하고 서울 지역의 한 중소기업에서 사무보조로 일하는 김모(29ㆍ여)씨는 이번 직장이 세번째 일터다. 김씨는 인력송출 업체에 소속된 비정규직 파견근로자다. 지난 두 곳의 일터에서는 딱 2년씩만 근무했다. 현행법상 근무 2년이 넘으면 비정규직 근로자는 정규직으로 전환하거나 해고해야 한다.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 전환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김씨는 비정규직 철폐, 최저임금 인상, 불법파견 철폐, 노동법 개정 같은 노동계의 구호에는 관심도 없다. 6년째 직장생활을 하면서 야근수당 한번 받아본 적이 없는 김씨에게는 모두 남의 일에 불과하다. 김씨는 "어떤 노동자를 위해 제도가 만들어지고 고쳐지는지 모르겠다"면서 "내게 고용불안과 차별은 변하지 않는 일상이 됐다"고 말했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노동정책의 포커스를 대기업과 거대노조에서 중소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법 개정이 이뤄져도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반대로 대기업 노조는 혜택은 혜택대로 챙기면서 새로운 요구를 개발한다.
이준상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 수의 99%, 일자리의 88%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에 노동정책의 포커스를 맞춰야 국민경제에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면서 "중소기업이 경영안정과 권리보장이라는 윈윈의 틀을 먼저 갖출 경우 대기업 노사의 반성도 이끌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노동계 요구 분출…기업들 초긴장=여야를 막론하고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내세운 대선 후보들 때문에 그 어느때보다 노동계의 요구가 분출하고 있다. 으레 노동계는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자기 목소리를 높여왔지만 올해는 더욱 강한 톤을 구사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올해의 5대 의제로 ▦정리해고 철폐 ▦비정규직 철폐 ▦민영화 저지 ▦노동악법 개정 ▦노동시간 단축 등을 설정하고 총력투쟁을 예고했고 선거를 앞둔 정치권도 이 같은 요구에 대체적으로 찬성하는 분위기다. 19대 국회 개원 이후 환노위에 발의된 58건의 법안 중 46건이 노동 관련법안이다.
경제단체들은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여론전 등을 벌이며 맞서고 있다. 일부 경제단체들은 "정치권이 노조화됐다"며 노골적으로 반대의사를 표시하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 SJM 등에서 벌어진 기업형 용역업체들의 폭력이 사회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과거의 구사대 폭력이 '기업형 폭력'으로 진화한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기업들은 초긴장 상태다. 올해 대규모 파업사태를 겪은 한 10대 그룹 계열사 임원은 "한국 사회는 노동 문제 해결의 방향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비정규직 문제든, 사내하청이든, 장시간근로든 사업장마다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이면 매년 갈등과 손실이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자리 확대가 노사관계 안정의 기본=전문가들은 고용 없는 성장이 노사갈등을 키운 결정적인 이유라고 분석한다. 따라서 차기 정부의 노동정책은 일자리 확대정책과 함께 개발, 실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최근 한국선진화포럼 주최 토론회에서 "기업은 비정규직을 최소화하고 피치 못할 경우 동일노동ㆍ동일임금 원칙을 지켜야 한다"면서 "이런 맥락에서 대기업의 성장을 저해하는 출자총액제한제 부활, 신규출자 금지 등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준상 교수는 "자본이 노동을 배척해가며 성장하면 곤란하다"면서 "고용과 투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아울러 "일자리를 한번 잃으면 다시 구하기가 몹시 어려운 게 현실이므로 고용보호를 위한 정책도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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