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교수의 수많은 저서와 논문들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학문적으로 뛰어난 업적을 쌓았을 뿐 아니라 명쾌하고 비판적인 분석으로 시사적인 문제도 깊이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케인스 이후 가장 글을 잘 쓰는 경제학자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특히 외환위기를 겪은 아시아와 남미 경제에 대한 연구와 서구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통찰은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그는 지난 1994년 11~12월호 ‘포린 어페어스’에 실린 논문 ‘아시아 기적의 신화(The Myth of Asian Miracles)’에서 동아시아 경제의 위기를 예고해 우리나라에 이름을 알렸다. 동아시아의 초고속 성장은 효율성 향상이 아니라 생산요소의 과다 투입 때문으로 조만간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결국 아시아는 그로부터 3년 뒤 외환위기를 맞았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한국에 대한 국제통화기금(IMF)의 획일적 처방을 맹렬히 꼬집기도 했다. 그는 지금까지 20여권의 책을 냈고 수백권의 논문을 썼다. 주요 저서로는 ‘국제경제학’ ‘기대체감의 시대’ ‘공황경제학의 도래’ ‘엉터리 수학’ ‘대폭로’ ‘경제학의 향연’ ‘미래를 말하다’ ‘자기조직의 경제’ 등이 있다. 케인스언을 자처하는 크루그먼 교수는 이들 저서에서 일관되게 미국 정부의 금융규제 완화와 월스트리트의 자유방임 행태를 비판하는 한편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주장했다. 저서 ‘미래를 말하다’는 부시 행정부의 감세정책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그는 현재의 미국이 경제적 불평등이 가장 심했던 대공황 직전과 닮았다고 꼬집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노동자 보호 및 사회보장 정책을 편 결과 1950년대에는 빈부 격차가 줄었다가 1970년대 보수세력이 세를 넓힌 후 부시 행정부에서 양극화가 극대화됐다는 주장이다. 그는 뉴욕타임스 칼럼을 모은 저서 ‘대폭로’에서도 부시 대통령의 신보수주의 정책을 정면으로 다뤘다. 그는 정경 유착으로 엔론의 분식회계, 딕 체니와 핼리버턴의 유착 등 부정부패가 판쳤고 9ㆍ11테러도 예고된 재난이었다고 비판했다. 소수의 기득권 세력이 성조기 뒤에서 애국심을 악용해 자신들의 잇속만 차렸다는 지적이다. 학문적 업적도 다수 남겼다. 그는 저서 ‘자기조직의 경제’에서 ‘복잡계’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경제학에 사용했다. 무질서와 혼돈으로부터 질서 있는 상태로 자연스레 진화하는 자기조직화의 원리가 국제경제를 비롯해 수많은 경제현상에 적용된다는 것이다. ‘경제학의 향연’에서는 경제 사상과 정치권력 간의 상호 작용을 규명해 눈길을 끌었다. 또 생산성ㆍ경쟁력 제고라는 한국경제의 현황 및 과제도 지적해 국내 독자의 주목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