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명성황후’

12월이다. 해마다 이맘때쯤 되면 우리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과연 계획은 잘 달성했는지, 그렇지 못했다면 왜 그랬는지 내년에는 좀 더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꼭 실천해 내리라며 다짐에 다짐을 하곤 한다. 그러면서 주변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리기도 하고 미처 챙기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나도 역시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 정신 없이 바쁜 한해를 보냈다.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그간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가지려고 하는 요즘, 문득 나와 함께 고생한 많은 동료들을 위해 해준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렵사리 시간을 내 의원회관과 지구당 가족들이 모두 모여 공연을 보러 갔다. 중요한 약속 때문에 공연이 막 시작할 때 입장해 허겁지겁 자리에 앉아 무대가 잘 보이지 않는 구석 자리에서 본 공연이었지만, 아직도 감흥이 남아 있는 듯 하다. 뮤지컬 명성황후는 수년 전 당대 최고의 배우ㆍ스텝이 함께 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성황리에 공연을 마친 바 이싿. 그 후 텔레비전 사극으로도 등장해 큰 인기를 모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요 근래에 와서는 대중매체에서 그려지는 명성황후의 모습이 사실과는 다르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명성황후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역사에 대한 평가는 얼마든지 다양한 각도에서 이루어질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제 모습을 찾기 마련이다. 내가 명성황후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급변기에 처한 지도자가 과연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민씨 일족이 집권한 1873년부터 1895년까지는 우리나라로서는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서구 열강이 밀려오기 시작했고 이에 기존의 봉건 체제는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변화를 갈구하는 움직임이 생기면서 다양한 세력들이 얽히기 시작했고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농민 운동 같은 사건들이 일어나는 급변의 시기였다. 서양의 선진문물을 받아 들여 부국강병과 산업진흥을 꾀하면서 낡은 봉건제도를 허물고 새로운 질서를 세워야 했다. 내부적으로는 개화를 지지하는 세력이 있었고 그를 반대하는 세력도 있었다. 세력간에 다툼이 생겼고 외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역사속으로 조선의 마지막 국모 명성황후는 사라져갔다. 역사의 급변기에 처했을 때 과연 지도자는 어떠해야 할 것인가? 지금의 우리가 처한 현실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소득 수준 1만 달러의 덫에 걸려있고, 외국 시장과 경쟁을 해야 하며 정치적으로 개혁을 해야 하는 시기다. 과거의 역사는 우리로 하여금 다시 한번 우리의 현실을 되씹어 보게 한다. <원희룡 국회의원(한나라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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