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의 신용카드사인 LG카드의 유동성 위기가 표면화 된 것은 지난 14일, LG그룹이 금융당국과 채권단에 카드채 만기연장과 신규자금 지원을 요청하면서부터 불거졌다. LG카드는 이에 앞서 일부 은행으로부터 긴급 당좌대출을 받아야 할 정도로 자금부족에 시달렸다. LG그룹은 사태가 심각해지자 주말을 이용해 금융당국 및 주요 채권은행장들과 협의한 뒤 지난 월요일인 17일 연내 3,000억원 및 내년 상반기 7,000억원 등 총 1조원의 자본확충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LG카드가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는 시장의 불안감이 오히려 확산되자 신규자금을 긴급 요청했고, 채권단도 LG측의 자구노력을 전제로 2조원의 은행별 자금지원 분담액을 정하면서 한때 사태가 수습되는 듯 했다.
그러나 사태는 정작 이 때부터 급박하게 돌아갔다. LG측은 자금지원에 앞서
▲구본무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LG의 지분(5.46%)과
▲LG의 개인대주주 및 구 회장이 갖고 있는 LG카드(16%)와 LG투자증권(4.4%) 주식
▲LG카드가 갖고 있는 10조4,000억원의 보유자산 등을 담보로 제공하겠다는 `확약서`를 제출했으나 채권단은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LG측을 강하게 압박하기 시작했다. 지원에 앞서
▲구 회장 개인의 연대보증과
▲구 회장 외에 특수관계인(오너일가)의 94명의 ㈜LG지분 추가 담보제공
▲내년으로 예정된 7,000억원의 증자대금 연내 예치 등의 추가 자구노력을 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양측이 쉽사리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LG카드는 자금난에 봉착, 지난 21일부터 23일까지 현금서비스를 부분 또는 전면 중단하는 등 파행이 계속됐다. 특히 21일에는 교보생명이 3,015억원의 결제를 요구하면서 부도위기를 맞기도 했다. 이 때는 채권단이 이미 은행장 회의(21일)에서 24일 오전을 자금지원결정을 위한 `데드라인`으로 정한 상태였다. 이에 따라 금융권에서는 LG카드의 부도로 금융시장이 대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증폭됐고 이후 양측은 금융당국의 적극적인 중재 속에 벼랑끝 협상을 계속했다.
○…양측은 24일로 예정된 채권은행들의 최종 의사결정을 앞둔 23일 오후까지도 `구 회장의 연대보증`을 둘러싼 이견을 해소하지 못하면서 사태가 파국으로 치달아 `제2의 카드대란`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비관적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23일 밤 긴급중재에 나서는 등 강도높게 개입하면서 양측은 극적으로 타결점을 찾았고 금융대란에 대한 불안감도 일단 수면 아래로 잠복하기에 이르렀다. 막판에 일부 은행이 확약서 서명을 거부하며 버텼으나 금융당국의 의지가 강력하다는 확인한 후에는 은행권 공조로 돌아서는 분위기였다.
○…사실상 데드라인이라고 할 수 있는 23일은 그야말로 긴장의 연속이었다. LG그룹과 채권단의 협상타결에는 숨막히는 신경전과 지리한 협상이 계속됐고 상황은 매시간마다 변해갔다. 협상 결렬과 타결이 오락가락하던 순간 결정타를 날린 것은 금융당국. 협상상황을 체크하며 `개입할까, 말까`를 놓고 고민을 거듭하던 금융당국은 LG와 채권단간 험악한 말까지 오가며 협상결렬로 분위기가 잡히자 개별접촉에 나서는 등 적극적인 중재에 나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이날 오전까지 첨예하게 대립하던 채권단과 LG측이 최고위급 채널을 가동하기 시작한 것은 오후부터. 이덕훈 우리은행장과 강유식 LG그룹 부회장이 오후 4시께 서울시내 모처에서 만나 각기 한발짝 양보한 수정안을 내놓고 비공개 막후협상을 벌였다. 강 부회장은 이날 오전 그룹 및 LG카드 고위임원들과 대책회의를 가진 뒤 채권단에 재협상을 제의했고 이 행장은 오후 3시께 본점 행장실로 출근해 태스크 포스팀으로부터 LG측의 입장을 듣고 대책을 논의한 뒤 이순우 단장과 함께 약속장소로 향했다. 마라톤 협상에서도 양측의 이견이 팽팽하자 맞서자 금융당국이 중간에 나서 `서로 양보하지 않을 경우 시장 혼란을 감당해 낼 수 있냐`며 설득과 중재에 나섰다. 금융당국은 LG그룹이 성실한 자세로 LG카드 경영정상화에 나설 것이라며 채권단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감독원 김중회 부원장과 노태식 비은행감독국장 등 카드 관련 정책라인은 휴일 오후에도 출근하며 채권단과 LG측의 협상추이를 시간대별로 체크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통에 금감원 관계자들은 오후 9시까지 저녁식사도 거른 채 채권단에 지원동의서가 전달되는지 여부를 파악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동의서 접수과정에 감독당국의 강압이 작용했다는 지적에 대해 금감원의 한 당국자는 “개입하면 특정회사문제에 정부가 끼었다는 비난이, 방관할 경우 방치했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어 사실 딜레마였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시절이 어느 때인데 이런 식으로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막판 금융당국의 압박이 강도높았음을 시사했다.
○…채권단과 LG간 대치국면이 계속되자 일각에서 경제부총리 등 책임있는 정부 당국자가 중재해야 된다는 의견도 나왔지만 재정경제부는 끝내 `액션플랜`을 가동하지 않았다. 담당 사무관이 나와 현황을 파악했을 뿐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LG카드 문제는 채권단이 알아서 해결할 문제”라며 “24일 국회 예결위에서 카드 문제에 대한 질의가 나올 수 있어 이를 준비 중일 뿐 개입은 없다”고 말했다.
<이진우,이연선기자 bluedash@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