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준비하며 기다린 '작은 거인'

박민영 기자<문화레저부>

장정이라는 또 한명의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스타가 탄생했다. 153㎝ 단구의 이 선수는 세계여자골프 4대 메이저대회 중 하나인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LPGA 진출 6번째 시즌 만에 첫 승을 거둬 무더위에 지친 국민들을 잠시나마 시원하게 해줬다. 단신의 핸디캡을 극복한 장정의 우승은 오랜 기다림 뒤에 일궈낸 것이어서 그간 ‘코리안 군단’의 낭보와는 또 다른 감동의 깊이가 있었다. 한국 여자선수의 본격적인 미국 무대 진출은 지난 98년 박세리에서 시작됐고 박세리ㆍ김미현ㆍ박지은ㆍ한희원ㆍ박희정ㆍ안시현ㆍ김초롱ㆍ강지민ㆍ이미나ㆍ김주연 등이 우승 소식을 전해왔다. 이들 대부분은 데뷔 첫해, 또는 2년 안에 ‘여왕’에 오르는 기쁨을 맛봤다. LPGA 투어에서 지금까지 쌓은 ‘한국 군단’의 48승 중 어느 하나 중하지 않은 것이 없겠으나 6년 ‘무관’의 세월을 견뎌낸 장정의 이번 우승은 그의 밝은 미소와 함께 신선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냥 시간만 보냈을까. 인내와 노력과 연단의 기다림이었기에 열매는 더욱 달콤했다. 변변한 스폰서 없이 활동하며 ‘눈물 젖은 빵’을 먹어봤고 단신을 극복하기 위한 피나는 훈련과 연습으로 굵은 땀방울을 떨궜다. 새벽 조깅과 웨이트 트레이닝은 미국 진출 이후 그가 하루도 빠뜨리지 않은 일과였다. 체격의 열세를 이겨내는 요령도 체득했다. 파워의 약점을 정확도로 커버한 것. 어떤 상황에서도 일관성을 유지하는 스윙은 브리티시오픈 최종일 ‘골프 여제’ 아니카 소렌스탐과의 맞대결에서도 흔들리지 않으며 더욱 빛을 발했다. 영국의 한 신문은 ‘장정이 한결 같은 그의 스윙 리듬을 팔 수 있다면 갑부가 될 것’이라고 쓰기도 했다. 그의 밝고 긍정적인 성격이야말로 기다림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비바람과 추위가 한꺼번에 몰아쳤던 대회 1라운드에서 그는 “다른 선수들도 똑같은 조건인데 그냥 웃자”고 자신을 다독인 끝에 단독선두로 치고 나왔다. 자신의 단점에 대해 불평만 늘어놓고 주어진 환경만 탓하며 준비 없이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땅콩’에서 ‘작은 거인’으로 거듭난 장정의 쾌거가 하나의 자극제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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