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가 대통령으로 7일 취임하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전 대통령과의 권력 역전 현상이 나타날까. 파이낸셜타임스(FT)는 메드베데프 총리가 대통령으로, 푸틴 대통령이 총리로 서로 자리를 맞바꾸면서 둘의 관계가 역전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정부의 싱크탱크인 모스크바 정치공학센터의 알렉세이 마마킨 연구원은 "러시아 정치 제도가 총리보다는 대통령에 더 많은 힘을 실어주기 때문에 점진적으로는 대통령의 역할이 더 커질 것으로 본다"며 메드베데프 신임대통령의 우위를 예견했다. 메드베데프 총리는 지난 20여년간 '푸틴의 꼭두각시'로 여겨질 만큼 푸틴의 그늘 아래 머물러왔으며,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푸틴의 정치적 노선을 따르겠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푸틴이 순순히 권력을 내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미국 해리티지 재단 모스크바 지부 소속 연구원 예브게니 볼크는 "푸틴이 상당한 권력을 유지할 것"이라며 "푸틴은 퇴임 전에 미리 총리의 권한을 강화해 놓았다"고 설명했다. 푸틴 대통령은 85개 지방정부 주지사들의 업무평가를 크렘린궁이 아닌 행정부의 권한으로 이양했다. 내정 최고 책임자로서의 위치를 확실히 다져 놓은 셈이다. 푸틴은 또 총리 취임과 동시에 러시아 집권당인 통합러시아당의 대표도 맡게 됐다. 통합러시아당은 구소련 시절 공산당 이후 최대 규모의 정당으로, 정치적 입장보다는 푸틴을 구심점으로 운영돼 왔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푸틴이 사실상 세 번째로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다만 러시아의 헌법 때문에 푸틴 총리가 구소련 시기의 공산당 총서기처럼 군사ㆍ외교안보 분야까지 장악하지는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메드베데프와 푸틴의 '쌍두마차 체제'에는 언제든 충돌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러시아내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볼크 연구원은 지난 4월 14%까지 치솟은 러시아 물가를 예로 들며 "메드베데프도, 푸틴도 책임을 지고 싶어하지 않는다"며, "국가적 사안에 대해 책임을 질 사람이 불확실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취임을 두고 미국 대선주자들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ㆍ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선후보는 러시아 내정과 국제정책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이들은 앞으로 러시아 정부에 보다 자주 인권문제를 제기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존 매케인 공화당 대선후보는 좀더 강경한 입장이다. 매케인 후보는 그간 이란 핵문제에 대한 미-러 공조에 반대하면서 러시아를 선진8개국(G8)에서 퇴출시켜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 클린턴 후보 선거진영의 외교 전문가 마크 메디시는 "러시아나 중국 같은 나라와의 접촉 없이는 나머지 주요국들도 움직이기 힘든 시대"라며 "비판적 개입을 기조로 러시아를 상대해야 할 것"이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