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Story] 이종덕 성남아트센터 사장

"지역과 세계가 소통하는 복합문화공간 만들 것"
예술가들과 술잔 기울이며 얘기 나눈 게 인연
50년 문화행정 외길… 개혁 이끈 '불도저' 정평
"사람을 키우는 일이 인생에서 가장 남는 일"



"매년 여름 독일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에서는 바그너 음악제가 열립니다. 5만5,000장의 입장권을 구하기 위해 벌어지는 매표 경쟁률은 평균 10대1이 넘습니다. 모차르트와 베르디의 오페라는 뉴욕에서도 감상할 수 있지만 오리지널 바그너의 악극을 보려면 바이로이트시를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성남아트센터도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화된 공연ㆍ전시를 정착시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에서도 인정 받는 문화공간으로 자리잡을 것입니다." 지난 2005년 10월14일 성남아트센터 탄생의 산파역을 했고 현재의 센터로 키워낸 이종덕(75) 성남아트센터 사장은 "한 도시의 표정을 만드는 것은 바로 문화예술"이라며 "성남아트센터는 '세계를 겨누며 지역을 보듬는다'는 모토 아래 지역과 세계가 소통하는 세계적 수준의 복합문화공간으로 도약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경기도 성남시에 자리한 성남아트센터가 예술의전당ㆍ세종문화회관과 어깨를 겨루는 '수도권 톱3 공연장'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불도저'라고 불리는 이 사장의 추진력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가 성남아트센터에서 가장 강조하는 키워드는 '초연' '단독' '자체 제작' 등 세 가지. 성남아트센터에서 초연한 공연은 일일이 꼽기 어려울 정도다. 미국 기업인 출신으로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의 독보적인 지휘자로 유명한 길버트 카플란이 한국에 처음으로 방문해 개관 기념 공연을 맡았으며 유럽 현대무용의 신화로 불리는 에미오 그레코의 '비욘드' 세계 초연 무대 역시 성남아트센터였다. 세계적인 메조소프라노 안네소피 폰 오터의 최초 내한 공연과 '카라얀의 후계자'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세계적인 마에스트로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한국에서 처음 지휘봉을 잡은 곳도 성남아트센터였다. 세계 영화 거장인 장이머우가 연출한 중국국립발레단의 '홍등'을 비롯해 몬테카를로발레단의 '신데렐라' '라벨르' 등도 이곳에서 국내 초연됐으며 오페라 '파우스트' '낙소스섬의 아리아드네' 뮤지컬 '남한산성' 등은 자체 기획ㆍ제작한 대표 레퍼토리다. 1935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그는 다섯 살 때 아버지 손을 잡고 영화관에 갔던 일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말레이시아 독립운동가를 소재로 한 '마레이노 하리마오'라는 영화였는데 제가 세상에서 문화와 인연을 맺은 첫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해방이 되자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고 어린 시절 '조센징'이라고 놀림 받던 아픔에 대한 반작용 때문인지 대학 전공을 역사학으로 선택했다. 그가 문화예술과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은 것은 1960년대 초 문화공보부(현재의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선전국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다. "공무원이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실시한 1기 공무원 시험에 붙은 거예요. 문화공보부에서도 문화선전을 주업무로 하는 부서에 배치 받았는데 당시 공연 예술계는 불모지나 다름 없었지요. 적은 월급을 쪼개 예술가들한테 술도 사주고 밤새도록 얘기를 나눴던 게 지금까지 인연으로 이어지게 됐어요." 문공부를 나와 문예진흥원 상임이사, 88서울예술단 단장을 거쳐 예술의전당 사장과 세종문화회관 사장을 맡으면서 그는 한국 공연예술의 터를 단단히 다지는 데 열정을 쏟았다. 특히 공연장의 하드웨어뿐 아니라 뒤처졌던 서비스 정신 등 소프트웨어를 개선하는 데 역점을 뒀다. 예술의전당과 세종문화회관 사장을 거친 '예술행정의 달인'이 성남아트센터까지 경영하게 됐으니 불과 5년도 안 되는 기간에 성남아트센터가 눈부신 성과를 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이 사장은 공연이나 연주회 얘기만 나오면 풀어놓을 이야기보따리가 끝이 없다. 자신의 자서전 제목 '내 삶은 무대 뒤에서 이뤄졌다'처럼 무대 뒤에서 예술 활동을 지원하면서 자신의 삶도 완성됐다고 그는 믿는다. "1973년에 정명훈이 세계적 권위의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준우승을 하고 왔을 때입니다. 당시 스포츠 스타들은 해외에서 국위 선양을 하고 오면 김포공항에서부터 환영이 대단했는데 예술계 인사들에게는 그런 게 없었어요. 그래서 윗분들에게 우리도 환영식을 해주자고 했어요. 시청 앞에 대형아치를 세우고 오픈카에 정명훈을 태우고 카퍼레이드를 벌이며 환영 행사를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1990년대 중반 예술의전당에 한바탕 휘몰아쳤던 개혁 바람도 그의 작품이다. 그가 사장으로 부임한 당시 예술의전당은 오페라하우스 내 음식점들이 결혼식 피로연으로 돈을 벌기 위해 오페라하우스에서 예식업을 할 정도로 어수선했다. 이 사장은 소송까지 불사하며 오페라하우스 내 예식업을 금지시켰고 공연의 격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도해 예술의전당 본연의 분위기를 정착시켰다. 세종문화회관 사장으로 일할 때도 그의 개혁 바람은 계속됐다. "세종문화회관 사장실이 너무 크더군요. 사장실 뒤에 큰 공간이 하나 더 있어서 뭐냐고 물었더니 대통령이나 시장이 공연 보기 전에 쉬는 장소라는 거예요. 불경죄를 무릅쓰고 리모델링해 전시 공간으로 만들어버렸지요." 이 사장은 자신의 가장 큰 자산을 "직장에서 얻은 후배, 일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이라며 "사람을 키우는 일이 인생에서 가장 남는 일"이라고 말한다. 성남아트센터 개관 5주년을 맞아 그는 또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스위스의 도시 루체른에서는 세계 최고의 클래식 음악가들이 모여 축제를 벌이고 오스트리아 브레겐츠에서는 오페라 페스티벌이 열립니다. 해마다 수천만명의 해외 관광객을 불러들이며 도시 전체를 축제의 장으로 만들지요. 수도가 아닌 다른 외곽 도시에서 국제적인 문화 행사를 치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특색 있고 매력적인 프로그램과 실력 있는 아티스트들을 지속적으로 공급해준다면 도시가 활성화될 수 있는 가능성은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성남아트센터를 내외국인 누구나 한 번쯤 와보고 싶은 문화공간으로 키울 수 있는 토양을 다져놓고 싶습니다." 50여년 문화예술 행정의 외길을 걸어온 노장(老壯)의 다짐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이종덕 사장은
▦1935년 일본 오사카 ▦1960년 연세대 사학과 졸업 ▦1963년 문화공보부 문화선전국 ▦1983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상임이사 ▦1989년 서울예술단 단장 ▦1995년 예술의전당 사장 ▦1998년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1999년 세종문화회관 사장 ▦2002년 단국대 산업경영대학원 주임교수 ▦2004년~ 성남문화재단 상임이사 겸 성남아트센터 사장 ▦2009년 제3회 제주세계델픽대회 조직위원장
■ 성남아트센터 청사진은
"한국 대표하는 세계적 페스티벌 만들고 싶어"

지난 2005년 10월14일 개관한 성남아트센터가 다음달이면 만 5주년을 맞는다. 공연ㆍ전시 관객 수는 개관 이후 1년 3개월 만인 2007년 1월 말 100만명을 돌파했으며 같은 해 5월에는 순수 공연 관객 수 100만명을 넘어서면서 무서운 관객 흡인력을 과시했다. 개관 4년 10개월 만인 올 8월20일에는 공연ㆍ전시 합산 300만 관객 돌파의 쾌거를 이루며 수도권 문화 허브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했다. 성남 시민의 3배가 넘는 문화 소비자들이 성남아트센터를 방문해 전시와 공연을 즐긴 셈이다. 개관 5주년을 기념해 올해 성남아트센터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올 초부터 지난달까지 슈퍼 비르투오소 아르카디 볼로도스의 첫 내한 무대를 비롯해 개성 강한 해석으로 이슈를 만들어왔던 마에스트로 로저 노링턴과 슈투트가르트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한국 초연 무대, 장한나가 지휘하는 청소년관현악축제 '앱솔루트 클래식' 등이 열렸다. 오는 10월에는 구스타프 말러 탄생 150주년을 맞아 말러 스페셜리스트 이반 피셔와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선사하는 말러 교향곡 7번 연주(10월8일), 현대 발레의 이단아 마츠 에크의 색다른 해석을 볼 수 있는 프랑스 리옹 국립오페라 발레단의 '지젤' 공연(10월29~30일) 등이 예정돼 있다. 개관 5주년을 맞아 이 사장은 ▦고객 중심의 전문 예술 행정과 경영기법을 도입하고 ▦완성도 높은 공연물과 품격 있는 대중예술 작품을 무대에 올리며 ▦세계적인 페스티벌을 만들어 발전시키는 한편 ▦안정적인 지원과 다양한 수익사업을 통한 재정자립을 이뤄나가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이를 통해 '수도권 톱3' 공연장으로서의 위상을 더욱 확고히 다지는 한편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수준의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입지도 확립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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