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공적연금 '주식매수 강요' 아베에 반기

운용자산 124조엔 세계 최대
"채권투자 줄여라" 정부 압박에
"간섭말고 제 할일 해야" 직격탄


세계 최대 연기금펀드인 일본 공적연금(GPIF)이 '아베노믹스'에 대해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나섰다. 아베 정권은 연기금의 주식투자를 확대해 올 들어 부진한 주식시장을 끌어올리고 이를 통해 경기에도 활력을 불어넣을 계획이다. 하지만 GPIF 수장이 해외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방안을 공개적으로 거부하고 나서 큰 파장이 예상된다.

미타니 다카히로(사진) GPIF 회장은 17일(현지시간) 발행된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의 주식투자 확대 요구에 대해 "GPIF는 지난 2006년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기관으로 탈바꿈했다"며 "일본 금융감독원은 GPIF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 말고 제 할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의 목적은 일본 주가를 떠받치는 게 아니다"라며 "그런 기대는 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GPIF는 국민연금·후생연금 등 일본 내 각종 연기금을 통합 운영하는 독립 행정법인으로 운용자산 규모가 124조엔에 달한다. GPIF는 다른 국가의 유사 연기금에 비해 보수적으로 자산을 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9월 현재 자산의 약 58%를 일본국채에 투자하고 있다.

그나마도 지난해 6월 주가부양 요구에 맞춰 종전의 67%에서 점차 줄인 것이다. 현재 GPIF는 일본 정부 안팎으로부터 수익률 2.8%(지난주 기준)에 불과한 국채투자 비중을 52%로 줄이고 그만큼 증시에 투자하라는 압력에 직면한 상태다.

아베 총리의 자문위원장인 이토 다카토시 도쿄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이날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GPIF도 다른 연기금처럼 수익률을 10년간 5% 이상 달성해야 한다"며 채권 비중을 2년 안에 40%대까지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 안팎에서 아베노믹스에 대한 회의론이 고개를 드는 상황에 연기금의 주식투자 확대는 증시상승을 통한 경기부양에 매력적인 카드다. 지난해 닛케이225지수는 무제한 금융완화에 힘입은 막대한 자금유입 덕에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며 아베노믹스 안착의 상징처럼 여겨졌지만 올 들어서는 11.48%나 급락했다.

게다가 지난해 4·4분기 경제성장률마저 기대에 못 미친 것으로 나타나면서 추가 개혁조치의 필요성과 함께 함께 정부의 몸이 달아오를 수밖에 없다.

정부는 오는 6월 발표할 신성장정책에서 GPIF의 자산 중 국내증시 투자비율을 5%포인트 높이고 그만큼 일본 국채투자 비중을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경우 일본 증시에 유입될 자금은 최대 6조2,000억엔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토 교수가 이끄는 자문단은 지난해 11월 GPIF에 해외자산과 사모펀드, 원자재, 인프라 및 부동산 등 투자수단 다변화와 주식투자 비중 확대를 권고했으며 금융감독원은 한달 후 낸 보고서에서 일본 증시를 즉시 부양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공개 지지하기도 했다. 아베 총리도 1월 다보스포럼에서 GPIF가 성장으로 가는 투자에 기여할 것이라며 직접 압박했다.

이 같은 압박에 대해 미타니 회장이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그는 "우리 일은 사람들의 돈을 안전하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투자해 그들의 자금을 지키고 관리하는 것"이라며 "채권 비중을 52%까지 낮추라는 요구는 연금 지출액이 5조엔으로 예상되는 현실상 불가능하며 이런 요구는 실제 사안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투자수단 다변화를 준비 중이며 수익률은 아베 정권이 인플레이션만 끌어올리면 나아질 것"이라며 "연기금 투입이 증시부양에 즉각 효과를 내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GPIF에 대한 일본 정부의 압박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시오자키 야스히사 자민당 정조회장 대행은 아베 총리의 다보스포럼 발언 이틀 후 GPIF의 지배구조를 바꿔 정부의 관여를 자유롭게 하는 법안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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