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개혁의 쌍두마차인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감독위원회가 7일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제시한 개혁프로그램의 윤곽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마련한 청사진과 엇비슷하다. 구체적인 제도개선안은 공정위ㆍ금감위는 재경부ㆍ민간전문가가 참여하는 태스크포스의 논의를 거쳐 결정할 예정이다. 기업들은 경기 침체라는 현실을 감안해야 하고 시장경제논리에 반하는 제도도 완화 내지 폐지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지만 `참여정부`의 의지가 강한 만큼 인수위 시절의 청사진 상당부분이 수용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공정위의 출자총액제한제도 강화방침에 대해 사실상 `속도조절`을 시사한데다 재경부도 출자제한제도 만큼은 완화 내지 현상유지 쪽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어 진통을 겪을 전망이다.
◆공정거래위원회
공정위의 재벌개혁방향은 2001년 하반기 대대적인 규제완화조치로 2002년부터 완화된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사실상 원상복귀하고, 재벌의 금융기관 사금고화를 막기 위한 기존 제도를 대폭 강화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만 앞으로 3년 뒤 재벌개혁이 성과를 거둔다면 기존 재벌정책을 전면개편할 수 있다고 밝혀 주목된다.
▲재벌규제제도 `U턴`?=정ㆍ재계 합의사항에 따라 공정위가 완화한 금융기관 의결권 제한조치와 출자총액제한제도가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된다. 재벌의 사금고화우려가 높은 제2금융권에 대한 규제강화가 1차 타깃. 공정위는 2001년까지 제2금융기관이 보유한 재벌 계열사 주식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전면 금지했으나
▲적대적 M&A방지
▲경영권 확보
▲임원 임면 등에 한해 보유주식의 30% 범위에서 의결권행사를 허용했었다. 조학국 부위원장은 “이달 중 출범할 `산업ㆍ금융자본분리` 태스크포스에서 의결권제한 완화조치에 대해 외국자본의 인수합병시도가 실제로 있었는지, 총수의 지배구조강화에 악용되지 않았는지를 살펴보겠다”말했다. 당시 규제완화의 실효성이 있었는지를 철저히 검증하겠다는 의미다. 현재로선 과거처럼 금융계열사의 의결권행사가 전면 금지될 가능성이 높다.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재검토도 같은 맥락이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신중검토를 주문해 공정위의 의지와 달리 당분간 현제도가 유지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공정위는 2002년 규제완화후 재벌의 전체 출자액의 40%이상이 예외를 인정받아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지는데다 삼성 등 재무구조우량기업이 출자총액제한 대상에서 `졸업`하는 문제점이 노출되자 예외조항축소에 비중을 두고 있었다. 이동규 독점국장은 “찬반양론이 엇갈리고 있지만, 이달 중 제출받기로 한 재벌의 출자현황자료를 분석해 보면 제도개선방향이 잡힐 것”이라고 설명했다.
▲3년후 재벌정책 재검토가능=이날 업무보고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이다. 공정위는 3분기중 시장개혁의 중장기 비전을 발표하고 내년까지 지배구조개선을 위한 제도정비를 마무리한 뒤 3년동안 개혁성과가 있으면 기존 재벌정책을 전면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공정위가 평가하는 `개혁성과`의 잣대가 어느 정도인지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어렵지만
▲부당내부거래 감소여부
▲순환출자 비중축소 여부
▲계열사간 독립 경영여부 등이 핵심지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가 재벌의 지배ㆍ소유구조가 정상화되고 부당내부거래가 근절됐다고 판단되면 1차적으로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내지는 적용대상 축소, 지주회사 설립요건 완화 등이 검토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쉽게 한다는 점도 재벌에 대한 당근이라 할 수 있다. 지주회사 설립요건인 부채비율 100%와 자회사 지분율 50%(상장사 30%)는 그대로 두되 이 같은 설립요건을 맞추기 위한 유예기간(1~2년)을 연장하고 연결납세제도 적용과 법인세제상의 인센티브도 제공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금융감독위원회
금감위는 재벌의 금융지배에 따른 시장 왜곡 방지와 가계대출 및 신용불량자 대책ㆍ금융 규제 완화ㆍ회계 제도 개혁 등의 현안을 보고했다. 노 대통령은 “과거 규제개혁위원회가 카드사의 길거리 회원 모집을 금지하도록 한 규제를 불허한데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며 “국민들은 건전한 금융시스템ㆍ안전한 제도 운영을 바란다는 것을 명심해 달라”고 지적했다.
▲대주주자격 유지제=대주주 자격유지제는 금융회사를 설립한 뒤에도 대주주가 재무건전성ㆍ부당내부거래금지 등의 요건을 갖추도록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주식처분명령을 내려 부적격 재벌의 금융지배를 아예 끊도록 하는 제도다. 금감위는 대주주 자격유지제를 도입할 지, 재벌이 금융회사를 인수할 때 요건심사제를 도입할 지를 놓고 저울질하고 있다. 재벌의 제2금융기관 지배는 자산기준으로 증권 41%, 투신 42%, 생보 54%, 손보 51%, 신용카드 61%다.
▲가계대출ㆍ신용불량자 대응방향=신용불량자에 대해서는 특성에 맞는 신용회복지원제도를 활용한다. 대상별로는 1,000만원 미만의 소액연체자(143만명)는 개별금융회사에서 엄격히 심사해 대환대출 등의 채무조정방안을 강구한다. 1,000만원 이상 고액연체자(141만명)중 신용회복의지와 능력이 있는 경우는 금융회사 공동의 신용회복지원제도(개인워크아웃제도)를 활용토록 했다. 금감위는 신용회복지원원회ㆍ금융회사ㆍ시민단체 등과 실무단을 구성해 채무상환기간 연장 등 종합적인 개인워크아웃 실효성 제고방안을 마련, 이달중 발표하기로 했다.
▲금융규제 완화=이달중 민관합동 실무단을 구성, 금융회사의 자산운용제한이나 동일계열신용공여한도 제한 등 기존 규제를 재점검해 시장경쟁을 저해하는 불합리한 규제 등은 과감히 정리하기로 했다. 그러나 건전성 감독 등 시장규율 확립을 위한 규제는 현행 틀을 유지하기로 했다. 금감위는 이를 위해 금융규제의 순응도 조사 및 규제 일몰제 도입을 검토하며, 금융규제개혁 국민제안센터를 설치, 위원회에 설치, 운영할 방침이다.
<한동수기자 best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