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출연연구소에서 기초과학 분야 연구를 하는 A연구원은 최근 연구과정에서 연구의 방향을 바꾸면 훨씬 더 획기적인 결과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얼마 안 가 그 생각을 접어야 했다. 연구비 지원을 받는 과정에서 명시한 계획대로 하지 않으면 추가 지원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A연구원은 "무엇보다 연구실패라는 평가를 받는 것이 두려워 학자로서의 욕심을 거둘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의욕적으로 나서고는 있지만 현실적인 장벽이 너무 많다. 연구개발(R&D) 분야도 그 중 하나다. 현재 국내 과학계에는 단기성과 위주의 R&D 풍토가 만연해 획기적인 결과물을 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창조경제의 핵심 화두인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R&D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이 강조하는 분야는 바로 기초과학과 융합연구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기술(ICT)을 바탕으로 기초과학 성과물을 접목해 사업화해야 신(新)산업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따라서 기초과학과 융합연구 없이 진행되는 창조경제는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인재양성 ▲꾸준하고 장기적인 기초과학 지원 ▲신기술 사업화 확대 ▲학문 간 칸막이 철폐 ▲연구윤리 확립 ▲연구의 자율성 보장 ▲엔젤투자를 비롯한 선의의 투자 확대 등을 창조경제의 성공 요건으로 꼽았다.
민경찬 연세대 수학과 교수는 "기초과학 분야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부침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정부는 안정적 연구환경을 조성하고 연구자들은 스스로 만든 칸막이를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 교수는 "민간기업도 그동안의 추격형 R&D 투자에서 벗어나 선도형 투자로 전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