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폭에 담긴 광활한 유라시아

김호석 개인전 '문명에 활을 겨누다'

김호석의 '거인의 잠'

어디까지가 땅이고 어디부터 하늘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곳, 그 광활한 유라시아의 풍경과 풍물이 담백한 수묵화로 화폭에 담겼다. 동양화가 김호석이 10년간 몽고를 무려 48번(1,000여일간) 혼자 여행하면서 보고 느낀 인간과 자연의 모습을 담은 개인전 ‘문명에 활을 겨누다’가 15일부터 동산방 화랑에서 열린다. 80년대 도시풍경을 수묵으로 그려 미술계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그는 성철스님, 김구 등 역사적 인물들의 초상과 4.19, 5.18 등 민주 운동사의 현장을 그려내면서 현대적 감각으로 접근한 동양화의 가능성을 확인시켰다. 그는 98년 40대 초반의 나이에 국립현대 미술관이 제정하는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으며, 2000년 제 3회 비엔날레 한국 대표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작가는 인적이 없는 고비사막을 여행하면서 ‘삶’과 ‘죽음’이 자연 그대로 순환해 문명을 거슬러 원시로 역행하는 체험을 통해 새로운 회화의 영역을 넓히는 결과를 얻었다. 그의 그림은 서구의 미술형식을 모방한 작품들이 넘치는 요즈음 미술계에서 보기 드물게 가슴을 움직인다. 굵은 붓으로 누른 듯 번진 먹이 초원의 거칠고 부드러운 모습을 자연스럽게 담았으며, 유목민의 표정은 어디에선가 본 듯한 과거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전시되는 작품의 주제는 세가지. 우선은 생명의 삶과 죽음, 땅에서 죽은 소의 머리통 주변에 꽃이 피고 이빨 틈새에서 나비가 노는 모습을 그린 ‘죽음과 나비.’ 마를 대로 마른 소똥이 꽃이 되는 ‘아르가르의 향기’ 등이다. ▦두번째는 유목민의 일상을 포착한 작품들. 할머니의 손을 잡고 잔뜩 경계의 눈초리를 놓지 않고 있는 ‘수줍은 대지의 주인들’, 풀어놓은 말은 아랑곳 하지 않고 깊은 단잠에 빠진 장부의 모습을 담은 ‘거인의 잠’ 등 문명이 놓친 또 다른 세계를 오롯이 화폭에 담았다. ▦세번째는 유목문명의 공포인 ‘조드’(집중가뭄과 강추위가 겹친 대재앙)를 포착한 ‘대지의 마지막 풍경’ ‘조드’ 등이다. 그의 독특한 채색법인 ‘배채법’(종이 뒤에서 색을 칠하는 방법)으로 그려낸 인물은 너무 자연스러워 금방이라도 그림 밖으로 걸어 나올 듯 하다. 여행 후 한참 동안 붓을 들지 못했다는 그는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을 한정된 캔버스에 옮긴다는 것이 어려워 선뜻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며 “또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사유의 방식과는 너무나 다른 세계를 만나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심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28일까지 (02)733-5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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