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조사비 인플레' 우려

■ 閣議,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 의결
영수증 없는 처리한도 20만원으로 늘어 받는 사람 기대치 높아져


삼성그룹의 상무 A씨는 28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보고 걱정이 앞섰다. 이날 국무회의에서 신용카드나 매출전표 없이 기업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경조사비가 1회당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결국 영수증 없이 처리할 수 있는 경조사비가 늘면서 자칫 자기의 ‘생돈’만 늘어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불황으로 그룹 전체가 경비절감에 들어간 상황에서 개정안이 통과됐다고 회사에서 비용으로 처리해주는 규모가 커질 리 없는데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기대치가 올라갈 수 있는 탓이다. 삼성그룹의 경우 현재 각종 경조사에 상무는 10만원, 전무는 20만원, 사장급은 30만원 정도를 ‘관행상 비용’으로 처리해주고 있다. 임원 A씨는 그나마 월급이 많아 본인 돈을 들여 해결할 여유가 있지만 부장인 B씨는 전적으로 자기 부담으로 건당 5만원을 내왔는데 더 늘려야 할지 모르겠다며 더욱 걱정이다. 이처럼 기업 임직원들이 때 아닌 ‘경조사비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날 통과된 개정안이 국가 경제 규모에 맞게 현실화하는 한편 소비를 진작시킨다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회 전반에 ‘경조사비 인플레이션’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나마 기업체 고위임원들은 형편이 넉넉해 낫지만 박봉의 관료들이나 중소기업 임원들의 부담은 훨씬 크다. 중소기업 고위간부인 K씨는 “대기업 임원이야 회사에서 어느 정도 보전해준다지만 중소기업은 쥐꼬리만한 월급에서 떼어서 경조사비를 내야 한다”며 “불황으로 최대한 살림을 줄여 생활하고 있는데 (개정안 통과로) 괜스레 생활만 더 팍팍해질까 염려된다”고 푸념했다. 이날 통과된 접대비 실명제 폐지도 독(毒)으로 작용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50만원 한도’가 일종의 접대 가이드라인으로 잡혀 있었는데 실명제 폐지로 접대를 기대하는 액수가 커질 수 있다는 얘기다. 모 기업에서 대관(對官)과 홍보 업무를 맡고 있는 C씨는 “그동안에도 음성적으로 한도를 넘겨 접대하는 일이 많아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하기는 했지만 ‘50만원’이라는 기준이 주는 상징적 의미 때문에 접대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는데 이번 조치로 분위기가 오히려 왜곡된 방향으로 흐를지 모르겠다”고 염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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