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십자각] 자본시장통합법 산으로 가나

최근 들어 자본시장통합법 제정을 둘러싸고 금융계 안팎에서 마찰음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금융업의 대형화와 겸업화를 통해 우리나라를 ‘동북아 금융허브’로 발전시킨다는 구상 아래 관련법 제정을 추진해왔다. 정부는 그동안 공청회에서 제기된 의견을 바탕으로 이달 말 입법예고를 거쳐 올해 안에 국회에 법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하지만 은행과 증권 등 이해관계가 다른 업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서 입법작업이 정부 계획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가장 큰 쟁점으로 부상한 금융투자회사의 지급결제 기능 허용 문제부터 보자. 증권업계는 증권금융에 담보증권을 예치하는 고객예탁금만을 지급결제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신용위험의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은행업계는 안정성에 문제가 생겨 경제 시스템에 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크다며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다. 증권사에 지급결제 기능을 허용할 경우 관련자금 이탈을 우려하고 있는 은행권은 “정부가 일을 너무 서두르고 있다”며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은행권의 한 인사는 최근 “자본시장통합법이 정권 말기를 틈타 특정 업계의 ‘소원수리’를 위해 이용되고 있다”는 원색적인 발언으로 정부를 압박하기까지 했다. 은행계 주변에서는 “국회에 법안이 제출된 뒤 공청회가 다시 열릴 경우 크게 한판 붙을 것”이라는 얘기도 공공연히 흘러나오고 있다. 법 제정 작업이 쉽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인허가ㆍ감독권 일원화도 ‘뜨거운 감자’다. 재정경제부는 현재 건설교통부와 해양수산부ㆍ산업자원부ㆍ중기청 등으로 분산돼 있는 관할권의 일원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해당 부처는 완강하게 버티고 있다. 최악의 경우 자본시장통합법과 부처별 금융 관련 법안이 양립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럴 경우 금융투자회사가 통합법을 기반으로 자유롭게 상품을 운용할 수 있도록 한 근본 취지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자본시장통합법을 둘러싼 최근의 논란을 보면 정부부처도 금융업계도 자기 밥그릇 지키기에만 급급할 뿐 자본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데는 아무도 관심을 갖고 있지 않는 것 같다. 각자가 자기의 이해관철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과정에서 자본시장통합법의 근본 취지가 퇴색되고 이로 인해 우리 금융업계의 경쟁력이 후퇴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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