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두 거인의 경쟁

김문섭 기자 <정보산업부>

“LG가 대체 언제 출시한답니까?” 지난주 본지에 ‘LG전자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3D 게임 휴대폰을 개발했다’는 기사가 보도되자 삼성전자에서 즉각 전화를 걸어왔다. 더 뛰어난 성능의 게임폰을 만들어 곧 출시할 예정인데 출시 준비도 안된 LG가 발표만 서둘러 ‘김이 샜다’는 항의였다. 곧바로 LG의 반격이 이어졌다. LG전자는 “삼성이 게임폰에 구현했다는 ‘130만 폴리곤’이 가능한 칩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졸지에 거짓말쟁이로 몰린 삼성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쯤 되면 신경전이 아니라 비방전에 가깝다. 제품이 출시되고 사실 여부가 정확히 가려지면 어느 한쪽은 사과를 해야 할 판이다. 그 다음날에는 정반대의 상황이 이어졌다. 삼성이 ‘세계 최초로 움직임 인식 휴대폰을 개발했다’고 발표하자 이번에는 LG가 발끈했다. 자사 휴대폰에 이미 비슷한 기술이 적용됐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정작 세계 최초의 주인공은 팬택앤큐리텔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두 회사는 머쓱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태클’ 주고 받기는 사실 새삼스러운 풍경이 아니다. 지난해 말 LG가 미국 싱귤러의 3세대 휴대폰 ‘우선공급자’로 선정됐다고 밝혔을 때는 삼성이 “사실과 다르다”며 딴지를 걸고 나섰다. 미국 CDMA시장 1위 자리를 놓고도 서로 다른 조사 데이터를 인용하며 논쟁을 벌였다. 고화소 카메라폰 선출시 경쟁의 와중에는 상대를 헐뜯는 얘기들이 공공연히 흘러나왔다. 이 같은 ‘발표 마케팅’은 기술 우위를 강조하고 상대의 기를 꺾겠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언제부터인가 출시 준비도 안됐고 심지어 초기단계의 개발을 끝냈을 뿐인데도 발표부터 서두르는 행태가 나타났다. ‘발표만 먼저 하면 최초인가’라는 혼란이 생길 정도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간의 경쟁 역사는 곧 한국 전자산업의 역사라 해도 틀리지 않다. 두 거인의 세계 제패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는 국민을 위해서라도 감정 섞인 돌팔매질은 더 이상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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