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전략기지 물거품 내수용 단지 전락우려

美·日·아세안 등 주요 무역 파트너 거부감
"한국산 인정안될땐 완제품 수출 꿈도못꿔"
정부 "내수비중 높이고 공정 등 조정" 복안



북한 개성공단에 입주한 주방기기 업체인 리빙아트는 최근 멕시코로 개성산 냄비세트를 수출했다. 관례상 원산지 표기는 북한으로 해야 한다. 하지만 이 제품에는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가 새겨져 있다.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제품에 한국 상표가 붙어 첫 수출된 것은 남북경협의 새로운 장을 연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개성공단을 필두로 북한에 경제단지를 신설해 수출전략기지로 삼고 나아가 북한에 경제적 부(富)를 안겨다 준다는 정부의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내를 보면 그렇지가 않다. 멕시코로 수출된 냄비세트는 100% 남한에서 원자재를 공수해왔다. 북한에서는 노동력만 제공했을 뿐이다. 원산지 규정과 그에 따른 관세율은 국가ㆍ품목별로 상이한데 멕시코의 경우 한국산 자재가 사용된 냄비에 우리 상표를 다는 데 하자가 없다. 그러나 다른 나라로 옮겨가면 사정은 달라진다. 정부가 FTA 체결 과정에서 북한산 제품의 한국산 인정을 관철시키려고 노력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북한은 테러국가로 분류돼 수출시 통상적으로 한국산보다 높은 관세가 책정된다. 일부 국가는 아예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FTA를 통한 한국산 인정이 수반돼야 수출 제약도 받지 않고 저율의 관세를 적용받을 수 있을 뿐더러 국가ㆍ품목별로 다종다양한 원산지 규정 적용도 덜 받기 때문이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개성산 제품이 한국산으로 인정되면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어 판로확대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중요성을 설명하기도 했다. 통일부의 한 관계자도 “국내 내수용 하청기지로 개성공단이 운영될 수 있으나 한국산 간주가 되지 않으면 완제품 수출은 꿈도 꾸지 못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한마디로 내수용 공단은 될 수 있으나 수출기지로 삼겠다는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정부의 의욕적인 추진 덕에 개성산 제품의 한국산 간주 프로젝트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싱가포르ㆍ유럽자유무역연합(EFTA)과 맺은 FTA에서 상대국들이 우리 측 주장을 수용했다. 하지만 미국, 일본, 동남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 등 주요 무역 파트너 국가들이 개성산 제품의 한국산 인정에 대해 거부감을 표시하면서 일이 꼬이고 있다. 미국ㆍ일본ㆍ아세안 등은 우리의 주요 수출국가다. 실제 총 수출액에서 이들 국가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02년 40.8%, 2003년 37%, 2004년 34%, 올 1~10월 32% 등에 이르고 있다. 한 예로 현재 미국은 FTA 협상에서 개성산 제품의 한국산 간주를 공개적으로 수용gkwl 못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는 상태다. 이렇게 되면 개성 제품의 미국 수출은 불가능해진다. 완구의 경우 한국산은 0%의 관세가 적용되나 북한산은 70%다. 비금속제 장식용은 한국산 0%, 북한산 110% 등이다. 일본도 북한산에 대해 고율의 관세를 매기는 것은 사정이 다르지 않다. 개성산이 한국산으로 간주되지 않으면 북한산 제품의 경쟁력도 급강하한다. 개성공단에 진출한 기업의 한 관계자는 “개성공단에 관련 협력업체가 전부 들어와야 비로소 개성산 제품이 한국산보다 50~60% 저렴해져 경쟁력이 생긴다”며 “하지만 이렇게 될 경우 사실상 북한산 제품으로 분류돼 개성산 제품의 한국산 인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수출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역시 이 같은 점을 알고 있다. 하지만 통상협상에서 우리 측 주장대로 성과를 이끌어내기도 쉽지 않다. 정부는 이에 따라 주요 무역 파트너 국가들이 한국산 인정을 수용하지 않으면 개성공단의 내수 비중(현재 90%)을 높이고 상대국 원산지 규정에 맞춰 공정 등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간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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