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 간섭 효과 없애는 야누스 캡슐 나왔다

가톨릭대 이은성 교수팀 '야누스 나노입자' 개발
녹는 속도 다른 캡슐 붙여 약물간 간섭 최소화
3중·4중·포도송이 형태까지 적용 가능

야누스 나노 입자의 여러 모습. 3중 구조(왼쪽부터), 4중 구조, 여러 개가 붙은 구조, 일렬로 배열된 구조의 나노 입자가 보인다. /사진제공=교육과학기술부

국내 연구진이 최근 A약물과 B약물을 동시에 투여하면서도 간섭 효과는 없애는 기술을 개발했다. A와 B 두 개의 약물을 녹는 속도가 다른 나노 캡슐에 하나씩 넣고 두 캡슐을 붙여 몸 속으로 전달하는 방식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이은성(43) 가톨릭대 생명공학과 교수팀이 로마신화에 나오는 야누스의 형상을 모방해 2개의 서로 다른 나노 입자를 정확히 1대1로 결합시킨 새로운 형태의 나노 입자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20일 밝혔다.

기존 나노 입자가 약물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이 하나뿐이라는 단점을 극복한 것으로 약물을 둘러싸고 있는 나노 캡슐의 녹는 속도 차이 때문에 약물끼리 서로 간섭하지는 않지만 두 약물의 효과는 극대화할 수 있는 원리를 활용했다.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야누스 나노 입자=탁월한 항암치료제 A가 있을 경우 A가 최고의 효과를 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또 다른 약물 B를 함께 사용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두 약물이 버무려지면 오히려 서로의 효과를 반감시키는 상황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교수의 이번 연구는 이런 간섭 효과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서로 다른 성질의 나노 입자 2개가 붙어있는 모양에 착안해 '야누스 나노 입자'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야누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문(門)의 신으로 보통 두 개의 얼굴이 붙어 있는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이 교수 연구팀은 수정과 도자기의 주성분인 동시에 거의 모든 토사 암석 속에 존재하는 성분인 '실리카' 위에 나노 입자로 자라날 일종의 '씨앗'인 고분자(크기가 비교적 큰 분자)를 붙여 용매와 물을 접촉시켰다. 그러면 고분자 속에 있는 물을 싫어하는 부분이 뭉치면서 자연스럽게 속이 빈 동그란 공 모양으로 배열된다. 이렇게 자라난 나노 입자를 화학 처리를 통해 실리카에서 떼어내면 떼어진 부위에 화학적으로 접착력이 생겨 나노 입자끼리 붙어 야누스 나노 입자가 탄생한다.

이 교수팀은 이 같은 야누스 나노 입자 기술을 확대 적용해 3중ㆍ4중 구조 나노 입자와 포도송이 형태의 나노 입자 등과 같이 다양한 형상을 지닌 나노 입자 제조 및 나노 단위 입자형상제어기술을 개발했다. 이번 기술은 기존의 의ㆍ약학 분야에서 활용되는 나노 입자 소재의 한계를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연구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약물 복합제제는 21세기 제약산업 유망주=약물에 대해 강한 내성을 지닌 암세포를 치료한다고 가정해보자. 야누스 나노 입자의 한쪽 부분에 약물내성을 억제할 수 있는 약물을 넣어 먼저 방출한다면 치료 첫 단계에서 암세포의 약물내성을 순간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다. 이후 반대쪽 부분에서 항암약물을 순차적으로 내보내면 약물내성이 감소된 세포를 훨씬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

이런 전략은 실제 임상에서 두 가지 이상의 약물을 따로 혹은 한 번에 인체에 투여할 때 인체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약물 간 상호 간섭 효과를 최소화하면서도 우수한 질병 치료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물에 잘 녹는 나노 입자를 골라 약물이 잘 녹아 흡수되게 할 수도 있다. 시중에는 물에 잘 녹지 않는 약품이 많은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항암제나 류머티즘ㆍ백혈병 관련 약제들이다. 이 교수는 "나노 입자가 잘 녹지 않는 약물을 흡수해 우리 몸 속에 잘 퍼지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제약산업에서 개량신약의 일종인 약물 복합제제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되고 있어 이번 이 교수 연구 결과는 크게 주목 받고 있다. 특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후 고조되는 국내 제약산업의 위기를 극복하고 제약산업의 글로벌화 및 성장을 위해 고려될 수 있는 중요 기술 분야 중의 하나로 인정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교수는 "다양한 나노 입자를 의약품뿐만 아니라 기능성 화장품에도 응용할 수 있다"며 "화장품에 사용되는 수많은 성분들도 서로 간섭 효과 때문에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노 입자를 사용하면 간섭 효과를 줄여 다양한 기능이 포함된 화장품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연구 결과는 화학 분야의 권위지인 '앙게반테 케미지' 인터넷 판에 지난 18일 게재됐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