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 '인터넷 통제국' 오명 벗으려면


지난 14일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의 국제통신규약 개정을 위한 국제통신세계회의가 열렸다. 이번 회의는 민간기구인 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의 인터넷 관리 권한을 유엔 산하의 ITU로 이양하는 것을 포함한 인터넷 통제 조항 신설과 관련해 개최됐다. 중국ㆍ러시아 등은 인터넷 통제 조항 신설에 적극 찬성한 반면 미국과 유럽은 정부의 인터넷 개입을 통한 검열을 우려하며 이에 반대하는 등 국가 간 대립 양상을 보였다. 결국 총 151개국 중 미국과 영국을 포함한 20여개국이 최종서명에 불참했고 40여개국이 보류의 뜻을 표명했다. 이번 회의에서 찬성표를 던진 우리 정부는 비난에 직면했으며 중국ㆍ러시아와 함께 '검열 국가'로 낙인찍혔다.

하지만 이번 결정에 찬성표를 던졌다고 바로 인터넷 통제 옹호국을 운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최종안을 보면 애초에 문제시되던 인터넷관리기구화와 같은 주요 인터넷 통제 관련 내용은 빠져 있다. 인터넷 규제와 관련된 내용은 네트워크 보안 보장과 스팸 방지에 회원국들이 적극 노력한다는 선언에 가까운 내용만 포함됐다.

이 결정을 비난하고 책임을 묻기보다 스스로의 인터넷 운영ㆍ규제에 대한 원칙과 전략을 수립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앞으로 스팸 방지나 통신보안 협력 조항이 각국 정부의 인터넷 통제 근거로 사용되는 것을 감시하고 또 다른 인터넷 통제 조항이 마련되는 것에 반대해야 한다.

우리 정부의 입장은 인터넷에서의 표현의 자유 등 개인의 권리 보장과 자율규제에 기반한 기술 혁신, 온라인 경제 활성화라는 지금까지의 인터넷 발전 원리에 기반해야 한다. 이를 보장해주는 국제 인터넷 거버넌스 또한 투명성ㆍ개방성ㆍ포용성ㆍ동의성의 원칙하에 정부의 간섭 없이 이뤄져야 한다.

국내 이용자들은 이미 공인인증서나 인터넷실명제와 같은 정부 규제의 한계와 어려움을 직접 경험했다. 이 같은 값비싼 경험을 바탕으로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입장을 확립해야 한다.

누구와 같은 의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입장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술자, 학계, 기업과 시민단체, 누리꾼을 포함한 다양한 주체와 함께 국민과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이번 회의 때도 정부기관만 참여한 우리와 달리 미국은 100명의 대표단 중 반이 민간기업과 시민단체 참가자였다.

내년부터 우리나라는 사이버공간회의ㆍITU회의 등 굵직한 인터넷 관련 국제회의를 열게 된다. 부디 이때는 다양한 주체들의 참여하에 철저한 사전 준비를 거쳐 국민의 공감대를 획득한 우리의 입장을 가지고 회의를 이끌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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