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8대 대선 직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핵심 참모인 강석훈 의원은 "정책으로 대선에서 승리했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실제 새누리당은 민주당이 선점한 경제민주화 이슈를 추월하고 복지확대에도 적절히 대처하는 한편 가계부채 해결을 위한 국민행복기금 조성 등을 발표하며 정책 대결에서 우위를 점했다는 평가가 많다. 반면 문재인 민주당 대선 후보는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와의 단일화에만 매달려 '정책 파이팅'에 소홀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막판 선거전이 과열로 치달아 "정책 대결은 사라지고 네거티브만 남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지만 국민은 민주주의와 대의정치의 기초인 정당이 비방과 흑색선전이 아닌 국정 청사진과 민생현안 해결책으로 경쟁하고 수권 능력을 보여주기를 바라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의원 시절 "정당은 정책으로 말해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 부총리를 두 번 지내고 야당 원내대표를 역임한 김진표 국회 정치쇄신특위 위원장은 "정당이 집권에만 몰입해 정작 서민의 먹고사는 문제해결에 무능해 정치불신이 팽배한 것"이라고 말했다.
주요 정치인들의 이 같은 문제의식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정책정당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한국 정당의 현주소는 여전히 국민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실정이다. 정해구 성공회대 정치학과 교수는 "지금 정당은 직접 만드는 정책도 많지 않지만 행정부에서 만드는 정책조차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있으며 수정ㆍ보완할 능력은 더욱 찾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정쟁의 대상을 발굴하는 방면에는 천부적 재능을 보이는 정당들이 입법의 토대인 정책을 스스로 빛나게 만들지 못하는 것은 관심과 투자 자체가 미미한데다 선봉장 역할을 하는 정당의 싱크탱크가 절름발이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여의도연구소), 민주당(민주정책연구원), 통합진보당(진보정책연구소), 진보정의당(진보정의연구소)은 정당별 정책연구소를 운영하며 지난해 각각 83억원과 38억원, 7억원, 1억원의 지원금을 국고에서 받았다.
하지만 이들 연구소는 사실상 '편법운영'되며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2011년 기준 여의도연구소와 민주정책연구원의 지출 중 정책개발비 비중은 21.3%와 23.9%에 그치고 있다. 연구소 활동 중 정책개발 실적이 차지하는 비중은 13.2%와 15.6%에 불과하다.
여당 정책위의 한 관계자는 "정치자금법상 정당의 국고보조금 30%를 정책연구소에 쓰도록 돼 있지만 이를 제대로 지키는 정당은 없다"고 고백하며 "연구소에 이름을 올리고 임금을 받는 상당수 직원들이 중앙당에서 일하고 있어 연구역량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고 전했다.
연구소장 임명과 인력충원ㆍ연구활동 등에 중앙당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도 문제다. 정책 싱크탱크의 독립성이 거의 없어 총선ㆍ대선 등을 앞두고도 정책보다는 유리한 정쟁구도를 이끄는 전략∙전술에만 급급하다는 지적이다.
김원표 여연 연구위원은 "당면한 정책과제나 국회 지원을 당이 맡으면 연구소는 중장기적인 정책이나 선행연구를 담당해야 한다"며 "연구소가 어느 정도 당과 분리돼 분업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생과 경제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커지면서 여야는 정책연구소의 개혁과 경쟁력 강화가 정책정당의 뿌리를 내리는 출발점이라고 보고 있기는 하다. 새누리당은 지난달 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여연 혁신방안'을 의결했고 민주당도 정치혁신실행위원회의 의제로 민주정책연구원의 기능 강화를 앞줄에 놓고 있다.
그러나 각 정당이 눈앞의 이익과 기득권을 포기하고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통해 정책 분야의 역량을 강화해나갈지는 미지수다. 민주당의 한 고위당직자는 "정책연구소는 당내 지도부와 계파 간 이해관계가 걸린 큰 밥그릇"이라며 "정당 싱크탱크 강화를 위한 법 개정이나 당헌ㆍ당규 개정도 쉽지 않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를 제대로 실천하는 것인데 현재의 정치환경상 어렵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