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15일 “출자총액제한제도나 금산분리 원칙을 완화하거나 폐지하는 문제를 검토해야 한다”며 “이 같은 제도가 외국자본에 비해 국내자본을 역차별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밝혔다.
오는 31일 퇴임을 앞둔 박 총재가 고별강연에서 이같이 발언한 것은 한국 경제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한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기업 투자가 절실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박 총재는 이날 서울 은평문화예술회관에서 행한 ‘한국 경제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해’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과거 재벌들이 부채에 의존해 양적으로 팽창하던 시기에는 출자총액제한제나 금산분리 원칙이 필요했지만 기업의 국내투자가 절실한 현시점에는 이 같은 제도를 재검토해야 한다”며 “국내 투자 증대와 외국자본에 대한 국내자본의 역차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완화하거나 폐지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박 총재는 강북 재개발을 추진해 부동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평소 소신도 피력했다. 그는 “요즘 부동산 문제는 양적인 문제가 아니라 질적인 문제”라며 “신도시 공급을 늘리는 것보다 강북의 열악한 주거지역을 철거하고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고급 주택을 공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남 등 일부 지역의 부동산 급등은 경제문제가 아닌 사회문제로 대개혁을 통해 반드시 뿌리뽑아야 한다는 말도 곁들였다. 그는 구체적으로 공영개발을 위한 주민 동의를 3분의2 이상에서 50% 이상으로 낮추고 서울의 지역간 주거환경 개선을 유도하기 위해 재산세ㆍ담배세ㆍ자동차세의 시세와 구세를 균등화해야 한다는 방안도 제시했다.
박 총재는 아울러 “서울 주택문제는 교육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며 “주택문제를 해결하려면 중ㆍ고등학교에 대해 서울시를 단일학군으로 하는 추첨제를 운영, 평준화의 틀 속에서 학생에게 학교 선택권을 주는 방안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박 총재는 이날 구조조정 단계에서 발생하는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이 같은 양극화 문제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근본적으로 극복하기는 어렵다”며 “이 때문에 양극화 과정에서 소외되는 부분에 대한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게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개방과정에서 대기업이 이득을 많이 봤다면 세금 등의 형태로 손해를 보는 쪽에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