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금융 선진화 과제

지난해 국내 금융시장은 금융완화정책과 경기둔화로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국고채 3년물이 5%대에 안착됐으며 콜금리도 4%대에서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장단기 금리차도 축소되었을 뿐만 아니라 회사채 신용 프리미엄 역시 크게 줄어 들었다. 또한 구조조정과 실적호전 및 설비투자지연 등으로 자금수요가 감소한 데다 시중유동성이 풍부해지면서 기업의 자금사정도 좋아져 어음부도율이 지난 91년이래 최저 수준인 0.04%로 하락하였다. 그러나 가계신용의 급속한 확대문제와 시중자금의 지나친 은행권 유입 및 초단기화문제가 발생했다. 이것은 국내 금융시장의 선진화를 위하여 우리 모두가 지혜를 모아 풀어야 할 올해의 우선과제라고 생각된다. 가계신용은 지난 5년간 연평균 15.8% 증가해 2002년 9월말 기준 424조원으로 실질GDP대비 75% 수준을 넘어섬으로써 금융시장 내 가계부실 우려와 금융기관의 안정성문제가 제기됐다. 주요 원인은 안전자산 선호경향을 가지게 된 시중자금이 은행권으로 집중됐으나 기업의 자금수요가 감소함에 따라 저금리 기조 아래서 아파트 등 주택관련 가계대출이 급증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밖에 소득공제 혜택 부여에 따른 신용카드사의 경쟁적 영업과 카드 이용자의 과소비 및 신용불감증이 맞물린 것이 부차적인 원인이다. 그 동안 정부는 부동산 안정화정책과 더불어 가계대출 및 신용불량자 대책과 관련해 여러 정책을 시행함으로써 지난해 4ㆍ4분기부터 진정국면으로 돌려 놓았다. 예컨대 가계대출부문에서는 대손충당금 적립비율의 상향조정, 주택담보 인정비율의 하향조정,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개인신용평가 의무화 및 BIS위험가중치의 상향조정 등의 정책을 들 수 있다. 판매신용부문에서는 대손충당금 설정 강화, 현금서비스 비중 축소 및 카드발급기준 강화 등 건전 영업관행을 정착하도록 유도하였다. 신용불량자 대책과 관련해서는 신용정보관리제도를 개선하고 대금업의 양성화를 위한 대부업법을 제정하였으며 개인워크아웃제도를 확대시행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경주해 왔다. 그러나 가계신용부문의 억제정책이 부동산가격의 급락, 실업률의 상승, 금리의 급상승 등과 맞물릴 경우 가계소비의 급격한 위축을 초래하여 경제성장률을 축소시키고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증가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악화시킬 개연성이 있다. 따라서 보다 근본적으로는 자본시장을 육성함으로써 은행권으로의 자금집중을 완화하고 부동산시장을 안정화시킴으로써 가계대출 증가원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데 정책방향의 무게중심을 두어야 할 것이다. 또한 경기변동과 경제성장추이에 연동해 가계신용이 적정수준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가계신용 억제정책의 완급을 조절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된다. 지난해 금융기관 수신동향을 살펴보면 은행계정은 시중여유자금의 유입 지속으로 연중 65조원 증가한 반면 금전신탁은 8조원이 감소했다. 투신사의 경우 16조원의 자금증가가 있었으나 장기채권형 투자신탁이 15조원 감소한 반면 단기 채권형 투자신탁이 11조원 증가하고 MMF(머니마켓펀드)가 14조원 증가했다. 이러한 자금운용의 단기화 현상이 나타난 주요 원인으로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로는 장단기금리차가 전년대비 1.30%포인트나 축소된 점을 들 수 있다. 둘째로는 부동산의 가격폭등, 국내외 경제전망의 불확실성, 그리고 미국ㆍ이라크간 전쟁가능성 및 북한 핵문제 등에 기인한 증시침체와 변동성이다. 이렇게 금융시장 내 권역간(제1금융권과 제2금융권, 직접금융시장과 간접금융시장) 자금이동방향이 지나치게 한쪽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점과 시장의 큰 변동성은 국내 금융시장의 고질적인 현상으로 지적되고 있다. 자본시장 나아가 금융시장이 성숙되지 못한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다양한 금융상품이 시장에 나오지 않은 점과 가격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금융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금년에는 새로운 금융상품(만기별/위험별 금융상품, 장외파생상품, 새로운 구조의 자산유동화증권 등)이 시장에 많이 출시되고 그에 대한 가격 및 위험정보도 많이 생산ㆍ제공돼 다양한 선호체계를 가진 시장 참가자들이 참여함으로써 국내 금융시장이 가일층 성숙되고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이영진(한국기업평가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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