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게 아니라 정의의 결과다." 지난달 한국을 방문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뜻깊은 메시지를 전하며 정의의 필수 요건으로 용서와 협력, 그리고 '관용'을 제시했다. 타자의 권리를 존중한다는 의미의 관용. 종교 지도자들이 강조하는 '관용'이란 개념의 역사는 그러나 오히려 종교, 특히 기독교라는 불관용으로부터의 해방의 역사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책은 기독교가 소수 종교로 탄압받던 로마제국 시절과 기독교가 무소불위 지배 종교였던 중세시대,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사상을 무기 삼아 기독교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근대사회를 순서대로 짚으며 관용의 역사를 정리한다.
초기 기독교는 관용을 주장하는 종교였다. 기원후 1세기, 로마제국 내 소수 종교였던 기독교는 탄압을 받았다.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는 로마였지만, 유일신을 숭배하는 기독교는 국가가 신으로 추앙하는 황제조차도 거짓 신으로 여겼기에 박해가 불가피했다. 수난 속에 관용을 강조했던 기독교는 그러나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으로 종교의 자유를 쟁취한 뒤 일탈의 길을 걷는다. 로마의 전통 종교를 거부하고 이교도들을 탄압한 것. 기독교인들은 종교 개혁 이후에도 신을 믿는 방식의 차이를 두고 피와 목숨을 내건 전쟁을 치렀다. 박해받던 종교가 박해하는 종교로, 관용을 주장하던 자들이 불관용의 대명사가 된 셈이다. 이런 관점에서 책은 기독교가 지배하던 중세사회를 '암흑기'로, 기독교의 지배에서 벗어난 근대사회를 '이성의 빛으로 암흑을 몰아낸 사회'로 규정한다.
복잡다단한 기독교의 역사와 에라스무스, 루터, 칼뱅, 로크, 몽테스키외 등 사상가들의 이론을 관용이라는 관점에서 흥미롭게 풀어낸 점이 돋보인다.
"기독교는 가장 관용적인 종교지만 기독교인들은 가장 관용적이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계몽사상가 볼테르의 지적과 궤를 같이하는 책은 비단 특정 종교인뿐만이 아니라 서로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아 갈등에 빠져있는 대한민국 곳곳에 따끔한 가르침이 될 것 같다. 2만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