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달아오르고 있는 국내 인수합병(M&A)시장에서 막강한 자본력을 갖춘 사모펀드(PEF)의 영향력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이들 PEF의 대형 딜을 주도하면서 가격경쟁이 치열해져 기업을 파는 입장에서는 제값을 받을 기회가 커진 반면 인수자 측의 입장에서는 그만큼 비용이 늘어나 자칫 '승자의 저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최대 독립계 PEF인 MBK파트너스는 지난해 말 금호고속 예비입찰에 참여한 후 올 들어 KT렌탈과 금호산업 인수에 연이어 도전장을 내밀었다. 금호고속과 KT렌탈 딜에서는 중도 하차했지만 MBK는 1조원 가까운 매물 인수전에는 꾸준히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일본계 오릭스PE 역시 왕성한 식욕으로 현대증권을 인수했고 KT렌탈 인수전에는 한국타이어와 함께 인수를 추진하기도 했다. 국내 토종 PEF인 한앤컴퍼니도 한라비스테온공조 인수에 성공했고 IMM PE 역시 각종 대형 딜에 매번 도전하고 있다. 그동안 아이리버·버거킹·동양생명 등을 인수한 보고펀드는 최근 부동산신탁업을 하고 있는 한국토지신탁 인수를 위해 전략을 짜고 있다.
이처럼 독립계·외국계 PEF들이 국내 M&A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배경에는 막강한 자본력에 자리잡고 있다. 국내 연기금 등 펀드투자자들(LP)이 자금을 집행할 때 과거 투자 수익률(트랙 레코드)에 후한 점수를 주고 있어 이들 대형 PEF들의 자금 동원이 한결 수월해졌다. 이에 따라 PEF들은 크게는 한번에 1조원대의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딜에 꾸준히 관심을 보이고 있고 특히 업종을 가리지 않고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매물에 대해서는 겁 없이 달려들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월 말 기준 독립계·외국계 대형 PE의 출자 약정액은 국내 증권계열 PE(증권사·자산운용사 PE부문 포함)의 규모를 압도한다. MBK의 경우 지난 2005년부터 17개의 펀드를 조성했고 전체 규모는 6조3,663억원에 달한다. IMM PE 역시 2조1,535억원 규모의 자본력을 갖추고 있다. 한앤컴퍼니(2조3,296억원) 보고펀드(1조9,476억원) 등도 충분한 자금을 확보하고 있다. 오릭스 PE의 경우 외부에서 수혈 받은 자금은 4,035억원에 그치지만 일본 본사의 자본력을 합치면 3조원이 넘는 자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미래에셋PE(2조542억원)를 제외하면 국내 증권사 계열 PEF들의 자본력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 KTB PE(7,598억원), 하나대투증권(7,485억원), 한국투자증권(4,690억원·한국투자파트너스 포함), 대신PE(1,850억원) 등 자본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일부 독립계·외국계 PE가 국내 M&A 시장을 좌지우지하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IB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번 금호산업 딜과 관련해 입찰에 참여한 PEF 쪽에서 물건이 좋다는 이유로 구체적인 인수 전략을 짜지도 않고 일단 인수의향서(LOI)를 제출했다는 얘기가 돈다"며 "PEF들의 대형 딜 인수전 참여는 매각 측에서는 가격 경쟁을 벌여 긍정적일 수 있어도 실수요자들에게는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에 '승자의 저주'를 유도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일부 독립계 외국계 PEF로 자금을 몰아주는 국내 연기금 등의 펀드투자자(LP)들의 행태에 대해 불만도 나온다. 국내 증권사 계열의 한 PEF 대표는 "국민연금 등 국내 연기금들이 수익률과 트렉 레코드만 중요시해서 일부 대형 독립계나 외국계 PEF로 자금을 몰아주는 경향이 있다"며 "침체돼 있는 산업이나 기업을 되살릴 수 있도록 역량 있는 국내 PEF들에도 기회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국내 대형 매물 인수전에 참여하는 바이아웃 딜(50% 이상의 지분을 확보해 경영권을 인수하는 투자)에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국내 증권 계열 PEF들은 특정 산업계 사정에 밝은 인재를 영입해 차별화 전략으로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 지난해 분사한 대신PE는 박병건 인텔캐피탈 상무를 대표이사로 영입해 전력과 정보기술(IT) 분야 기업들과 기간산업 분야 업종, 또 국내 허리 역할을 하는 중소 중견 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새로운 펀드를 구상하고 있다. 지난달 중순 금융당국으로부터 자회사 출자 승인을 받은 유진 PE는 인프라 투자 전문가인 정재호 새마을금고 CIO 영입해 인프라·유틸리티·사회간접자본(SOC) 등의 특화 투자 펀드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