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된다고? 난 내 직관을 믿는다"

정주영 경영정신- 홍하상 지음 바다출판사 펴냄
정주영회장 경영철학은
반드시 된다는 확신 90%
되게 할 수 있는 자신 10%



한국 전쟁 이후 국토는 폐허로 변했다. 남한 교량 1,466개가 파괴됐다. 동네 섶다리 빼놓고 한반도 남단의 거의 모든 다리가 파괴되다시피 했다. 대구와 거창을 잇는 고령교도 그중 하나였다. 53년 4월, 정부는 교각만 남아있던 고령교 복구 공사를 현대건설에 의뢰했다. 공사 금액은 5,457만환으로 당시 정부 발주 공사로서 사상 최대 규모. 6ㆍ25 전쟁 동안 아이젠하워 당선자 숙소나 UN군 묘지 잔디밭 공사를 수주하며 재미를 봤던 정주영에겐 도약의 발판이자 새로운 도전이었다. 하지만 막상 교량 복구에 들어가니 난관이 한둘이 아니었다. 여름철 소나기 탓에 교각은 번번이 강물에 쓸려 내려갔다. 공사가 더뎌지면서 준비했던 자금은 바닥이 났고 결국 정주영은 동생 정순영이 살던 삼선동 기와집과 매제 김영주가 살던 돈암동 한옥집까지 팔게 했다. 여기저기서 군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공사를 끝내야 큰 손해만 볼 텐데 적당한 선에서 포기하는 게 났다는 충고도 들렸다. 하지만 정주영은 엄청난 손해가 불 보듯 뻔한 공사를 감행했다. 계약기간보다 2개월 늦게 완공된 고령교 공사. 애초 계획된 5,457만환의 두배가 넘는 1억2,000만환의 비용이 들어갔다. 모든 이들이 현대는 재기불능의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비웃었지만 정주영의 생각은 달랐다. “기업가가 신용을 잃으면 모든 것이 끝이다.” 손해를 감수하면서 공사를 끝마쳤다는 믿음 은 2년 뒤 빛을 발한다. 현대 신화의 바탕이 된 1957년 한강 인도교 복구 공사를 맡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 근대화를 일군 1세대 경영인 가운데 기업가 정신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는 대표적인 인물을 들라면 삼성의 이병철과 현대의 정주영을 꼽을 수 있다. 지주 집안에서 태어나 든든한 밑천을 바탕으로 한국 최대 기업을 일군 이병철 회장에 비해 정주영 회장은 대한민국 재벌 가운데 자수성가형 기업인의 대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 ‘하면 된다’‘매사에 신용을 잃어선 안 된다’ 등 21세기 기업 환경에서 보면 진부해 보이는 그의 기업가 정신이 요즘 신세대 샐러리맨 사이에서도 통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지독한 빈농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뛰어다니지 않은 노가다 판이 없었던 그야말로 맨주먹 사나이의 성공 철학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밀어 붙였다’는 표현을 유난히도 자주 볼 수 있다. ‘조심스레 진행했다’거나 주변 여건을 감안해 한 발짝 물러섰다는 비유는 찾아 보기 힘들다. “나는 어떤 일을 시작하든 반드시 된다는 확신 90퍼센트에 되게 할 수 있다는 자신 10퍼센트를 가지고 일해왔다. 안될 수도 있다는 회의나 불안은 단 1퍼센트도 끼워넣지 않는다. 기업은 행동이요 실천이다.” 그의 경영 철학은 직관을 바탕으로 한 실천이었다. 손해가 뻔한 고령교 공사를 끝까지 관철한 것도 바로 미래를 내다보는 직관력과 행동 우선주의 신념을 일찌감치 자신의 경영 철학으로 받아들인 덕택이었다. 3월 21일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5주기를 맞아 그를 다룬 책들이 서점 진열대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 책은 ‘캔두이즘’(할 수 있다는 정신)으로 불리는 정 회장의 경영철학을 살펴보면서 그것이 우리에게 남긴 의미를 되짚어 보고 있다. 이명박 서울시장,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 등 많은 현대 출신 인사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들을 들려주고 있어 흥미를 더한다. 노래방에서 자주 부른 그의 애창곡과 단골 골프장 전담 캐디의 증언을 통해 소머리 국밥을 유난히 좋아했던 정회장의 사적인 행보를 읽는 즐거움도 적지 않다. 2001년 발간된 그의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와 함께 그에 관한 책 수십종 가운데 고전으로 꼽힐만하다. 20년 넘게 논픽션을 써온 저자의 담백한 문체는 자칫 영웅주의 미담으로 흐를 수 있는 왕 회장의 이야기를 한편의 담채화처럼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