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명 대 43만9,000명.’ 세계 7위의 에너지 기업인 중국 페트로차이나에서 근무하는 유전개발 부문 인력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에너지 공기업인 석유공사에 비해 무려 1,100배나 많다. 전세계에 동시다발로 펼쳐지고 있는 ‘자원전쟁’에서 한국이 왜 주변국에 머물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실이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전문인력 양성, 기술력 확보, 투자재원 다양화 등 인프라 투자가 자원전쟁 승리의 필수조건”이라고 지적해왔다. 에너지 자원 확보는 투자규모가 워낙 큰데다 실패할 위험성마저 높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물론 정부조차 이런저런 사정을 감안해 과감한 투자를 결정하지 못해왔다. 그 결과가 글로벌 자원경쟁에서 한국을 ‘관전자’ 신세로 만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하지만 “아직도 늦지 않았다”고 조언한다. 지금부터라도 정부와 기업들이 자원개발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기회는 남아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 없인 백전백패=“이 지역에는 뚜렷한 탄화수소 발견실적이나 도로ㆍ가스 및 원유 파이프라인 등 인프라 시설이 없다.” 석유공사가 지난해 10월 러시아 사할린의 라마논스키 유전을 소유하고 있는 회사인 톰가스네프티에 대해 내놓은 보고서 내용이다. 하지만 7개월 뒤인 올 5월 러시아 과학아카데미는 “라마논스키의 추정 석유 매장량이 1억5,350만톤에 달한다”며 석유공사와는 정반대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같은 지역에 대한 조사결과가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걸까. 전문가들은 국내 전문가들의 분석능력 부족을 꼽는다. 사할린 지역에는 석유와 가스 매장량이 풍부해 지난해 3월 기준으로 육상에서만 하루 2,500만배럴의 석유가 생산돼 ‘검은 보물섬’으로 불린다. 일본과 중국은 정부와 민간기업이 동시에 뛰어들어 적극적인 투자를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이 지역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어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리하초프 러시아 에너지연구소 부소장은 한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나 기업들이 사할린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현재 국내 자원개발 관련 전문가는 선진국에 비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절대 부족하다. 지난 2005년 기준 국내 자원개발 전문인력은 총 540명. 이는 일본(3,500명)의 14분의1에 불과하다. 자원탐사성공률 역시 약 15% 정도로 세계적인 석유회사들의 30~40%에 비해 크게 뒤처진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유전개발성공률은 높아야 50%에 불과할 정도로 실패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전문성이 부족한 인력으로는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다”며 “기업뿐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도 유전개발과 관련해 능력을 향상시키고 다양한 경험을 축적할 수 있는 체계적인 교육체계 수립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기술력이 ‘광맥’ 찾는 나침반=자원개발은 극히 작은 단초에서 시작된다. 깊은 지하와 심해에서 광맥이 보내는 미약한 신호를 잡아내는 기술력이 가장 중요하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자원개발 기술은 세계 일류 수준에 한참 못 미친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국내 자원탐사ㆍ개발ㆍ활용과 관련한 기술은 주요 선진국의 50% 정도를 겨우 따라가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특히 실패확률이 높은 사업의 특성상 사업시작 여부를 결정하는 사업타당성평가가 가장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관련 전문가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형편이다. 시장전문가들은 이 같은 기술력 부재의 원인을 투자부족에서 찾는다. 실제 90년부터 2004년까지 우리나라의 에너지 기술개발 투자누적액은 미국의 4%, 일본의 6.5%에 불과하다. 특히 심해저ㆍ극한지 등 최근 주목받고 있는 지역에 대한 자원개발 기술이나 전문인력은 거의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업들은 서로 눈치 보기에만 급급하다. 리스크를 줄이는 공동개발은 서로의 이해가 달라 엄두도 내지 못한다. 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투자가 부진한 상황에서 기술력 저하를 논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고위험ㆍ고수익 사업인 동시에 국가기간산업에 속하는 자원개발사업의 특성상 정부가 기술개발 예산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직접 업계를 선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원 조달방법 다양화해야=석유ㆍ가스 등 자원개발은 대표적인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산업이다. 수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가 동반돼야 하지만 성공을 장담할 수 없어 정부든 민간이든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기란 쉽지 않다. 선진국들은 정부가 직접 나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거나 컨소시엄을 통한 다양한 재원조달 방안을 모색한다. 이웃나라 일본은 정부가 직접 나서 자금조달을 지원해 61년부터 2003년까지 우리나라의 석유개발 총투자액(7억9,000만달러)의 12배에 달하는 자금을 조성했다. 시장전문가들은 이와 관련, “정부가 주도해 은행과 민간기업이 컨소시엄 형태로 대규모 자금을 마련하거나 외국기업과 국내기업이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수출보험공사가 적극적으로 리스크를 관리하는 방안이 가능할 것”이라며 대안을 제시한다. 여기에는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 설정이 필수이며 장기간에 걸쳐 결과를 지켜보는 끈기가 있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