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과학기술자상] 오교수 연구세계

"1등 빼앗기면 고생도 허사" 2주만에 논문 완성하기도오 교수는 가슴을 조리며 산다. 특히 매달 한 번씩 네이처(Nature) 같은 학술잡지가 나올 때쯤 해서는 정도가 심해진다. "혹시 내가 하는 연구 결과를 다른 나라에서 먼저 발표하지는 않을까"하는 걱정 때문이다. 이런 걱정은 최근 단백질학(프로테우믹스)이 주목 받으면서 부쩍 잦아졌다. 인간게놈프로젝트(HGP)가 일단락 되면서 전세계 과학자들은 단백질의 역할을 규명하는데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자연적으로 1등 싸움이 치열해졌다. 남들보다 앞서면 희열을 맛볼 것이다. 그러나 간발의 차이로 선두를 뺏긴다면. 생각만해도 아찔한 일이다. 오 교수는 1등을 한 적도 놓친 적도 있다. "헬리코박터의 생존 원리를 규명했을 때는 절로 기분이 좋았어요. 하지만 실험이 끝나고 한창 논문을 작성하고 있을 때 다른 나라에서 똑 같은 논문을 먼저 발표했을 때의 허탈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어요." 오 교수는 아차 하는 순간에 1등을 뺏긴 적이 두 번 있다. 그럴 때면 실험실 식구들과 쓴 소주잔을 들이키며 서로를 위로했다. 오 교수의 주특기는 엑스선을 이용, 생체물질의 구조를 밝혀내는 것. 어떤 물질의 구조를 알고 나면 실험을 통해 성질을 규명한다. 이후 논문을 쓰고 학술지에 보낸다. 보통 논문을 쓰는데 걸리는 기간은 6개월. 그러나 오 교수는 2주 만에 논문을 쓴 적이 있다. 실험실 식구가 모두 붙어 밤을 샌 결과다. "보강실험을 하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어요. 하지만 1등을 놓치면 그 동안의 고생이 물거품이 되잖아요. 그래서 조금 부족해도 논문을 발표할 수 밖에 없어요." 그는 좋은 성과를 많이 내고 있지만 특히 구조생물학은 우리나라가 잘 할 수 있는 분야라고 말한다. "구조 연구에는 컴퓨터 작업이 많이 필요해요. 컴퓨터와 네트워크가 잘 발달된 우리나라는 좋은 조건을 갖췄다고 할 수 있어요. 또 세밀한 작업이 필요한 데 한국인들의 손재주는 외국에서도 잘 알려져 있죠." 오 교수가 박사학위를 받은 분야는 핵자기 공명. 그런데 지금은 엑스선을 이용한 3차원 구조분석이 주 전공.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두 분야는 사뭇 다르다. 박사학위까지 받은 분야에서 다른 쪽으로 바꾸는 것은 모험이었다. 오 교수는 외도(?)를 결심했지만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그런 그를 챙겨준 은인이 바로 버클리 대의 김성호 박사. "김 박사님도 처음에는 전공을 바꾸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워낙 결심이 확고한 것을 확인하고서는 저를 받아주셨어요." 오 교수는 네 번이나 편지를 쓰고서야 전공을 바꿀 수 있었다. 두 가지 분야를 접하면서 오 교수의 연구 폭은 크게 넓어졌다. 양쪽에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규명한 단백질은 전체로 보면 빙산의 일각도 되지 않는다. 아직도 해야 할 일이 엄청나다. 앞으로 100년은 더 연구해야 한다는 게 대체적인 예상. 오 교수는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욕심을 조금 드러내 보였다. "학문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모두 가치 있는 연구를 할 계획입니다. 기능을 전혀 모르는 단백질을 규명하고 단백질군(群ㆍ한 개의 구조를 알면 비슷한 나머지 80개 단백질의 기능도 한꺼번에 풀리는) 연구도 계속하고요. 문병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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