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세상을 떠난 배우 황정순은 1940년대 초부터 1980년대 말까지 약 50년간 배우로 활동하며 한국의 어머니상을 구현한 영화계의 ‘영원한 어머니’였다.
1925년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난 고인은 15세 때인 1940년 동양극장에서 연극을 하다가 1941년 허영 감독의 ‘그대와 나’에 출연하면서 영화와 인연을 맺었다.
해방 이후 장황연 감독의 ‘청춘행로’(1949)에서 며느리 역할로 주목을 받은 고인은 1950년대 아내 역할을 거쳐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어머니 역할로 눈도장을 찍었다.
김수용 감독의 ‘혈맥’(1963)에서는 억척스러우면서도 인간미가 넘치는 어머니의 모습을, 강대진 감독의 ‘마부’(1961)에서는 새엄마로서 가족을 보듬는 따뜻한 연기로 주목받았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한국영화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모은영 프로그래머는 “극단출신으로 어렸을 적부터 출중한 연기력으로 어머니 역을 맡았다”며 “어머니상의 정형을 이룬 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은희 씨와는 나이가 한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영화에선 어머니와 딸의 관계로 많이 나왔다”고 덧붙였다.
전후 세대의 피곤함이 느껴지는 1960년 초반부터 산업화가 정착된 1980년대까지 아버지상은 변화했지만, 은근과 끈기와 자애를 바탕으로 한 포근한 어머니의 모습은 1980년대 초까지 거의 한결같았고, 그 중심에는 고인이 있었다.
유현목 감독의 ‘장마’(1979)에서는 분단의 상처를 지닌 어머니 역을, 김수용 감독의 ‘굴비’(1963)에선 어렵사리 키운 자식에게 홀대당하는 어머니 역으로 관객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한국적 어머니상이 잘 구현된 대표적 작품으로는 1967년부터 김희갑과 호흡을 맞춘 ‘팔도강산’ 시리즈다. 꼬장꼬장하면서도 집안의 대소사를 책임지는 가부장적 아버지와 대비되는 따뜻한 어머니로서 고인은 사랑받았다.
1970년대에서 80년대로 넘어가면서 고도화된 산업사회에 뒤처진 어머니의 모습도 조명했다. 이두용 감독의 ‘장남’(1984)에서 아파트에 적응하지 못해 엘리베이터를 우두커니 바라보는 장면은 ‘강남 개발’이라는 시대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김종원 평론가는 “고인은 주연뿐 아니라 조연은 물론 감초 연기까지 마다하지 않았다”며 “시대의 변화에 따른 어머니상을 잘 보여준 뛰어난 배우였다”고 평가했다.
고인은 연극 200여 편, 영화 430여편 편에 출연했다. 대표작으로는 ‘김약국의 딸들’(감독 유현목), ‘화산댁’(장일호), ‘내일의 팔도강산’(강대철), ‘육체의 고백’(조긍하) 등이 있다.
영화계에 끼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07년 신상옥 감독과 유현목 감독에 이어 세 번째로 영화인 명예의 전당에 올랐으며 지난해 대종상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디지털미디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