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출범을 앞두고 재계는 좌불안석이다. 인수위의 경제정책이 기업의 투명성에 맞춰져 있는지 기업활동의 자율성 확대에 무게가 실려 있는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고, 어제는 개혁을 말하다가도 오늘은 안정을 역설하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
최근 국내 최대기업의 한 임원이 사석에서 기자에게 털어놓은 불만이다.
그는 이어 “이렇게 불안하니 어떻게 안정적인 경영전략을 세울 수 있겠는가. 재벌정책의 혼선이 경제의 주름살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무리도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대선 하루 전인 지난해 12월 18일 단일화 파기의 빌미가 됐던 명동유세에서 “반드시 재벌개혁을 하겠다. 정몽준 대표도 도와달라”며 강도 높은 재벌개혁을 다짐했다.
그런데 당선 이후에는 목소리의 높낮이가 들쭉날쭉했다. 노 당선자는 들끓는 반미시위와 북한 핵 문제 등으로 경제에 경고음이 터지던 12월 31일 경제5단체장과의 간담회에서 한 걸음 물러선 듯한 모습을 보였다. “시장에 급격한 충격을 주는 조치는 없을 것이며 재벌 등 경제 정책은 현재의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는 발언은 재벌개혁 의지의 후퇴로 받아들일 여지를 남겼다.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초청간담회(지난 1월 17일)에서 노 당선자는 다시 재벌개혁 의지의 불씨를 되살렸다. “재벌을 그 자체로 미워하거나 싫어하지 않는다. 합리적인 시장, 자유롭고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이 목적이다.” 당선 전 입장보다는 강도가 낮지만, 12월 31일 경제5단체장에게 전했던 메시지와는 분명 다른 목소리다.
이쯤되면 `재벌개혁`의 내용이 도대체 무엇인지 오리무중이다.
차기정부의 재벌개혁에 대한 의지와 강도, 속도는 미래의 한국경제를 탄탄대로로 올려놓을 수도 있지만 자칫 깊은 수렁에 빠뜨릴 수도 있다.
앞길에 가시밭이 펼쳐진 것도 힘들다. 협곡이 가로막고 있으면 더 힘들다. 하지만 앞을 볼 수 없는 것은 무엇보다도 불안하고 힘들다.
<문성진 기자(산업부) hnsj@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