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자회담 결산ㆍ전망] 접점 못찾은 북핵 ‘다시 안개속’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베이징 3자 회담이 사실상 결렬됨에 따라 북한 핵문제는 다시 짙은 안개 속으로 빠져들게 됐다. 모종의 진전을 기대했던 이번 회담은 당초 사흘 일정조차 채우지 못하고 북ㆍ미 양측이 마지막 날인 25일 아침 협상 없이 보따리를 싸면서 결국 파행 종국을 맞았다. 특히 북한이 특유의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며 `핵무기 보유`를 공개함에 따라 북핵 문제는 핵개발 포기라는 사전 예방적 수준에서 이미 개발한 핵무기 해체라는 더욱 복잡한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기약 없는 이별=3자 회담에서 진전은 없더라도 양측 입장을 충분히 교환함으로써 후속 협상에서 뭔가 성과가 있지 않겠냐는 기대감이 적지 않았다. 대화 자체를 거부하던 양측이 머리를 맞대기로 방향을 선회한데다 모르쇠로 일관하던 중국이 적극적인 중재자로 나섰기 때문이었다. 형식은 미국의 기존 요구대로 다자 협상을 취했지만 실지론 북한의 양자 협상을 띄면서 양측이 명분보다는 실질적인 해결책을 추구하는게 아니냐는 시각이 나오던 터였다. 그러나 23일 회담이 시작되자 양측의 기존 입장을 담은 기조연설을 개진, 회담 분위기가 처음부터 냉각됐다. 체제보장부터 확실히 하라는 주장과 핵포기부터 해야 협상한다는 원칙적 발언이 접점없이 이어지면서 회담은 성과는 커녕 최악의 충돌을 피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으로 치달았다. 급기야 회담 이튿날 북한이 공식 석상에서는 처음으로 핵보유 발언을 하면서 서로에게 앙금만 남긴 채 총총히 갈라지고 말았다. ◇체제 보장–핵포기 주장 팽팽히 맞서=사실 이번 회담에 대한 비관론은 회담 시작 전부터 꾸준히 제기돼왔다. 회담이 열리기 전부터 양측이 접점을 찾기 힘든 자신의 주장을 천명했기 때문이다. 북한측은 핵문제는 미국의 적대시 정책과 생존권 위협에서 비롯된 만큼 불가침 조약 등 체제보장안이 확실히 돼야 한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천명했다. 이에 대해 미국측도 검증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방식으로 핵개발을 폐기해야만 협상이 가능할 것이라는 마지노선을 분명히 제시했다. 게다가 회담직전 일부 미 언론에 공개된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의 `북한정권 교체` 메모는 싸움의 도화선 역할을 했다. 여기에 발끈한 북한이 핵보유 발언으로 맞서며 회담은 아무 성과 없이 조기 종결됐다. 결국 미국은 자신의 요구만 밝히고 북한에 공을 넘김으로써 이번 회담을 협상용이 아닌 대북 정보용 내지 북한 진의 파악용으로 접근했다는 분석이다. ◇미 강경파 목소리 커질 듯=회담 결렬로 미국내 온건파 수장인 콜린 파월 국무장관의 목소리는 약화하는 대신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등 강경파의 입지가 더욱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북 강경론자로 알려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대북정책을 둘러싼 강온파간 논쟁에서 일단 온건파의 손을 들어주며 3자 회담을 성사시켰다. 3자 회담 직전 모종의 진전을 기대한다며 낙관 전망을 내놓던 부시는 회담 결렬 직후 북한이 다시 협박게임으로 회귀했다며 북한을 쏘아 붙였다. 미국은 북한 핵보유 발언이라는 예상치 못한 사태에 놀라기는 했지만 공식 발표에서 시사했듯 이번 회담에 대한 기대는 크게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이번 회담의 정밀한 분석작업에 들어가고 이후 강온파가 다시 만나 추후 협상 지속 여부를 포함해 다음 수순을 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이날 베이징 3자회담과 관련해 “이번 회담에서 우리는 조선반도 핵 문제의 당사자들인 조-미 쌍방의 우려를 동시에 해소할 수 있는 새롭고 대범한 해결방도를 내놓았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이 해결 방도가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결국 베이징 3자회담은 공식적으로는 진전없이 종결됐지만 모든 여지가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북한 의도에 대한 미국의 판단, 북한의 향후 입장 전환 가능성, 중국의 중재 노력 등이 향후 협상구도의 방정식을 풀어갈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병관기자 comeon@sed.co.kr>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