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릴 기업은 살리고 죽일 기업은 최대한 빨리 죽인다.」법무부가 9일 마련한 회사정리·화의·파산 등 기업도산과 관련한 3개법안 개정시안의 핵심은 한마디로 이같이 정리할 수 있다. 화의나 회사정리(법정관리)에 들어가게는 해주되 가능성이 없으면 곧바로 파산시켜 더이상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다.
다시말해 종전에는 절차에 들어가기가 어려웠을 뿐 일단 절차가 시작되면 지지부진하며 시간끌기가 일쑤였고 실패해도 다시 화의 또는 회사정리를 신청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개시결정후 「퇴출이냐 갱생이냐」를 단 한번에 결정지어 기업의 구조조정을 신속하게 하자는 것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한번 기회는 주지만 생사(生死) 만큼은 분명히 구분짓자는게 개정취지』라고 설명했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회사들이 파산선고를 받지 않은 채 장기간 방치됨으로써 기업구조조정의 발목을 잡는 일은 없도록 한다는 게 요체다.
이를위해 개정시안에는 화의·회사정리개시까지의 기간을 대폭 단축하고 결정요건을 완화토록 하는 한편 회생불능기업은 반드시 퇴출시키는 「필요적 파산선고」 규정을 새로 담았다.
이와함께 상법개정에 따라 사정(査定)제도 대상이 확대돼 「명예회장」도 부실경영의 책임을 지도록 함으로써 재계의 기존 경영관행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기간단축및 요건완화=화의는 3~5개월(법정시한), 회사정리는 통상 5~6개월씩 걸리던 개시결정 기간을 신청후 1개월안에 끝낸다. 종전에는 조사절차를 거친뒤 개시여부를 결정했으나 앞으로는 개시후 실사작업을 벌여 갱생 또는 청산여부를 결정한다. 절차에 드는 비용조차없는 회사를 제외하고는 일단 화의든 회사정리든 개시해 준다. 따라서 대기업의 화의신청제한은 없어졌다.
◇1회적 해결원칙=그동안에는 화의·회사정리 개시 때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고 설령 기각을 당하더라도 중복해서 재신청을 할 수 있어 구(舊)경영주가 경영권 유지에 악용할 소지가 많았다. 심지어 두서너번씩 화의와 회사정리 신청을 번갈아내며 처리를 지연시킨 기업들도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일단 절차를 개시한뒤 필요적 파산선고 규정에 따라 단 한번에 갱생 또는 청산 가운데 하나만으로 기업의 앞날을 결정토록 했다.
◇정리계획안 가결요건 완화=일부 채권자들의 부당한 「버티기」를 막기 위한 장치다. 종전에는 채권감면시 정리담보권자중 5분의 4 이상 동의로 지급시기 유예시 4분의 3 이상 동의를 받아 정리계획안이 통과됐지만 이를 각각 4분의 3, 3분의 2 동의로 완화했다.
◇조사위원·경영전문가 역할=화의·회사정리 개시까지만 활동했던 조사위원(통
상 회계법인, 신용평가회사 임원)의 기능을 강화, 개시결정후 회생계획 작성에 실질적 역할을 수행하고 법원을 보좌할 수 있도록 했다. 정리회사의 인수·합병(M&A)을 위해 관리인에게 자문할 경영전문가도 둘 수 있도록했다.
◇채권자간 공평성=정리절차에 들어가기 앞서 구경영주가 자신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채권자에게 미리 빚을 갚거나 부당한 계약을 맺는 것을 막는 「부인권」을 관리인이 행사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 관리인이 채권단 눈치를 보느라 권한행사를 안할 경우 법원이 부인권 행사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 또 회사정리 기간중 동결되는 채권 중 조세채권만은 예외로 삼아왔으나 전체 채권간의 형평성을 위해 특혜조항을 삭제했다. 한편 근로자 보호 차원에서 파산절차가 진행중인 회사라도 임금, 퇴직금,임치금, 신원보증금등은 필수적 비용인 「재단채권」의 범위에 포함시켜 근로자들이 먼저 받을수 있도록 했다.
◇사정(査定)확대=사실상 회사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법적인 책임이 불분명했던 명예회장을 사정대상에 포함시켰다. 즉 법정관리인이 구경영진중 명예회장에 대해 부실경영에 따른 손해배상 금액을 사정, 회사정리 재판부에 배상을 신청할수 있게 됐다. 사정제도란 회사정리 절차를 진행하면서 정식소송을 통하지 않고 관리인이 구경영주에게 부실경영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한 간이절차다. 지금까지 사정재판 사례는 한보그룹 법정관리인인 손근석(孫根碩)씨가 정태수(鄭泰守)전 한보그룹총회장과 정보근(鄭譜根) 전 사장을 상대로 사정신청을 내 1,631억원의 배상명령을 받아낸 것이 유일하다.【윤종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