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세상] 칭기즈칸의 무덤은 어디에…

■중국역사 암호 44 / 허이 지음, 도서출판은행나무 펴냄
양귀비는 죽지않고 日서 도사가 됐다?
中역사속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다뤄
마치 추리소설 읽는 듯 '흥미진진'

유구한 중국 역사에는 밝혀지지 않은 미스터리가 곳곳에 숨어 있다. 바이칼호 근처에서 태어난 칭기즈칸은 몽고를 통일하고 원나라를 이끌며 중국을 넘어 유럽까지 정복한 활동 영역만 분명할뿐 어디에 묻혔는지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의 무덤을 찾는것이 후대의 숙제로 남았다. 사진은 칭기즈칸의 탄생지 전경.


5,000년 중국 역사에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상당수 존재한다. 그 중 하나가 700년 이상 찾지 못하는 칭기즈칸(1162~1227)의 무덤이다. 몽골족을 통일하고 중국 대륙을 지배했던 칭기즈칸은 서하(西夏)를 공격하기 위해 행군하던 도중 65세를 일기로 병사했다. 전해 내려오는 설에 따르면 칭기즈칸을 매장한 곳은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수만 필의 말로 무덤 위를 밟게 해 땅을 평평하게 고른 뒤 나무 한 그루를 심어 묘비로 삼았다고 한다. 나중에 다시 찾아올 수 있도록 낙타 새끼 한 마리를 잡아 무덤 위에 그 피를 뿌렸을 뿐이었다. 칭기즈칸의 자녀가 제사를 지내고자 할 때는 살해된 새끼낙타의 어미를 길잡이로 삼아 그 자식의 피냄새를 찾아가는 본능에 의지했다. 이런 이유로 결국 칭기즈칸의 무덤은 천고의 수수께끼가 돼 버렸다. 오늘날 고고학자들 사이에서는 칭기즈칸 무덤의 위치에 대해 몽골국 경내 헨티산 남쪽, 몽골국 항애산, 중국 감숙성 육반산, 내몽골 오르도스 오톡기 내 천리산이라는 4개나 되는 학설이 통용된다. 하지만 어느 것도 공인된 것은 없다. 2004년 10월 일본과 몽골의 합동 조사단이 칭기즈칸의 무덤을 찾았다고 발표했고 영국ㆍ중국 등의 매체가 잇달아 이 사실을 보도했다. 몽골국 헨티성 아브라가 궁전 유적지 인근 지역이 칭기즈칸의 무덤으로 지목됐다. 역사 기록서인 '흑달사략(黑韃事略)'의 기록과 일치하는 지리적 상황, 건축물의 양식과 계량단위가 일치한다는 점 등이 이곳을 칭기즈칸 행궁 소재지로 볼 수 있으며 때문에 무덤도 존재한다는 주장이었다. 베이징 항공항천대학교 역사학 교수인 저자는 일부 학자들의 비판을 인용해 원나라 황제의 밀장(密葬) 무덤은 궁전 안에 존재할 수 없으며 무덤을 입증하는 확실한 유물이나 기록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저자는 '칭기즈칸의 무덤은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책은 중국인들이 자부심을 갖는 탄탄한 역사 이면에 숨은 미스터리 같은 뒷이야기들을 각종 역사서와 논문 등 고증 자료를 바탕으로 기술하고 있다. 당 현종의 총애를 받았던 양귀비는 755년 안사의 난으로 피난길에 올라 현종에게 자결을 명 받지만 그 죽음 역시 미궁에 빠져 있다. 시신을 이장하려 했으나 유골을 찾을 수 없었던 것. 양귀비가 자살하지 않고 도망쳐 여자 도사가 됐다는 설과 반란군의 우두머리가 양귀비의 미모에 반해 시녀를 대신 죽이고 일본으로 도망치게 했다는 설도 있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자신이 양귀비의 후손이라 주장하며 족보까지 내보이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이 외에도 진시황의 진짜 아버지는 어머니 태후와 내통한 여불위라는 설을 비롯해 72개에 이르는 조조의 가짜무덤, 여황제 무측천의 비석에 글자가 없는 이유, 건륭제는 바꿔치기한 한족 아이라는 설, 형을 시해하고 황위에 오른 송 태종의 비화 등 44개 역사적 사건이 파헤쳐졌다. 책 제목에 '암호'라고 소개된 것처럼 '추리소설'을 읽는 듯 흥미진진하다. 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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