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주택기금은 한마디로 「눈먼 돈」이었다. 착공시늉만 낸 주택건설현장에 1,300억여원이 지원되는가 하면 며칠후 부도가 나는 업체에 선급금을 지원하는등 운용의 난맥상이 여실히 드러났다. 무자격자에 대한 지원, 형식적인 현장조사등으로 총체적 부실덩어리라는 지탄을 받았던 농어촌 구조개선자금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이같은 국민주택기금의 부실운용은 주택은행과 건설교통부의 방만한 운용·관리및 감독소홀이 엉켜져 빚어낸 합작품이라는게 건설업계의 지적이다.
◇주먹구구식 지원=지난해말 현재 무려 5조원에 이르는 국민주택기금이 부도 아파트에 대출승인됐다. 이중 3조원은 이미 대출된 상태고 나머지는 아직 지급되지 않았거나 관리자금이라는 명목으로 주택은행에 예치돼 건설업체와 주택은행의 공동관리를 받고 있다.
이처럼 많은 돈이 부도 아파트에 잠기게 된데는 건설업체의 도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은행과 관계기관의 주먹구구식 운용·관리의 탓도 크다.
이같은 점은 여러 사례로 뒷받침되고 있다. 주택은행은 충북 청원에 468가구의 임대아파트를 짓기로한 K건설에 부도 6일전인 지난해 6월5일 선급금 26억원을 지급했다. 또 충남 당진에 임대아파트 229가구를 지을려는 I종건에 부도 4일전인 지난해 3월24일 14억원을 대출했다.
게다가 부도 직전에 기금을 대출받아 공사비가 아닌 다른 용도로 사용한 건설업체도 상당수에 달해 주먹구구식 기금운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H종건의 경우 부도직전인 지난 97년 경기 시흥에 짓던 아파트를 근거로 100억원의 기금을 지원받아 은행빚을 갚는데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금지원액에 비해 공정률이 떨어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같은 현상은 건설교통부와 주택은행이 건설업체가 사업계획승인서와 착공계만 제출하면 무턱대고 기금을 지원해온데 따른 것이다.
◇입주예정자·세입자등 피해 부작용=건교부와 주택은행은 사업부지를 담보로 잡고있는데다 대한주택보증과 신용보증기금이 보증을 섰기때문에 공사중단기간만큼 채권회수가 늦어지는 것외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얼핏 들으면 그럴싸한 얘기지만 속내를 알고 보면 문제가 복잡하다.
우선 선급금 지급비율이 전체 지원금의 30~40%로 높고 대출금에 비해 공정률은 현저히 떨어져 승계시공및 제3자 인수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국민주택기금이 지원된 상당수 부도 아파트가 공사중단된채 수년째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P주택이 충북 진천에 건립중이던 임대아파트 120가구는 지난 96년 부도로 공사가 중단된채 제3자 인수업체를 물색중이나 아직 업체를 찾지못하고 있다. 95년 부도로 쓰러진 Y사의 경기 수원 분양아파트 57가구는 경매를 진행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낙찰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부지를 경매에 부치더라도 선순위채권·담보대출·분양 및 임대보증 등 권리관계가 복잡한데다 경매가 이뤄질경우 입주예정자나 세입자들은 선의의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이과정에서 입주예정자들과의 마찰을 빚는등 후유증도 만만치않다.
주택은행 포항시 홍해지점은 부도아파트에 대한 채권회수를 이유로 경북 울진군 울진읍에 건립한 임대아파트를 경매에 부쳤으나 길거리에 나앉게된 입주자들이 강력 반발, 말썽을 빚기도 했다.
◇시급한 대책마련=건설업체의 신인도와 재무구조에 대한 사전조사를 실시해 그 결과를 지원조건에 반영하고 착공여부와 공사진행상황을 수시로 파악하는 등 기금 운용및 관리체계를 강화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와함께 기금운용및 관리에 헛점이 드러난만큼 주택은행에 대한 정부의 감독이 한층 강화돼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기금 운용·관리처를 다원화하거나 정부가 출자한 대한주택보증으로 이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전광삼 기자 HISA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