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제품이 뜬다] 건강ㆍ행복ㆍ자연을 꿈꾼다 依ㆍ食ㆍ住ㆍ혁명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이른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트레이닝복을 갖춰 입고 달리기나 빨리 걷기에 여념이 없는 동네 사람들이 적잖이 눈에 띈다. 길거리 전봇대에는 몇 미터가 멀다하고 헬스클럽, 요가센터 오픈 안내문이 붙어 있다. 대형 마트가 아니더라도 매장 한 구석에 유기농 야채코너 하나쯤은 갖춰 둬야 제법 잘 되는 슈퍼마켓 티가 난다. `화학``인공` 등 일상 소비재에서 제법 친숙하게 들렸던 단어들이 어느 틈엔가 소비자들의 기피 문구로 인식이 되고, `자연``천연`이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으면 시장에 명함을 내놓기도 힘든 지경이 됐다. 이제는 누구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웰빙(Well-being)`이 바꿔놓은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다. 몸의 건강을 다지면서 동시에 정신적인 휴식과 여유를 되찾아 행복을 추구하자는 것, 쉬운 말로 `잘 먹고 잘 살자`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삼는 웰빙은 이제 우리의 일상 생활과 소비 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확고한 트렌드로 자리를 잡았다. 먹거리부터 주거 환경, 의생활 등 생활 전반에 걸쳐 활기와 여유를 되찾고 삶의 질을 업그레이드 시키려는 노력은 `미국 고소득층 젊은이를 따라한 또 하나의 유행 풍조`라는 일부의 비난과는 달리,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좀더 충만한 삶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핵심적인 문화 코드로 자리잡고 있다. 앞만 보고 달리느라 신체 건강과 정신적 스트레스의 적신호에 직면한 현대인들에게 `건강하고 여유로운 행복한 삶의 추구`는 어떤 선전문구나 화려한 약속보다도 구미가 당기는 것임에 틀림없다. 웰빙이 소비자들의 생활 스타일에서 점차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자, 오랜 경기 침체와 내수시장 포화로 인해 새로운 성장 시장 개척에 목말라 있던 국내 업계들은 너나 없이 웰빙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신체 건강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식품업계의 경우 변화의 속도는 가장 빠르게 나타난다. 슈퍼마켓에서 비싸게 잘 팔리는 제품은 통통하고 길쭉하게 사람 손길 냄새가 물씬 나게 잘 자란 콩나물이 아니라, 가느다랗고 뿌리가 길게 늘어져 볼품 없어 보이는 유기농 콩나물. 쌀도 저렴한 일반미보다는 고가의 친환경쌀, 정제된 백미보다는 다소 거칠어도 자연 상태에 보다 가까운 현미가 선호 대상이다. 몸에 좋다는 말이 들리자 술도 와인으로, 식용유는 올리브유로, 탄산음료는 녹차로 대체하는 소비자들도 적잖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기름기 적은 음식을 즐기고, 채소류 특히 유기농 식품을 비싼 돈을 들여서라도 찾아 먹고, 화학조미료와 방부제, 농약 등 유해물질이 함유된 음식은 악착같이 피하는 것이 요즘 소비 성향에 맞춰 각 업체들은 건강식품 개발을 차세대 핵심역량사업으로 지목하고 있다. 값싸고 간편하다는 이유로 현대사회에서 각광을 받아 온 햄버거 등 패스트푸드는 웰빙의 대두와 함께 소비자들의 냉대에 서둘러 생존의 돌파구를 모색하고 나섰다. 샐러드 메뉴를 강화하고 몸에 좋다는 소재를 보강해 웰빙 트렌드에 동참하려는 패스트푸드 업계의 살아남기 위한 변신이 올 가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기름에 튀긴 밀가루 면 때문에 웰빙과는 거리가 멀어져 버린 라면업계 역시 `라면도 몸에 좋게 만들 수 있다`고 설파하듯 건강에 초점을 맞춘 신제품 개발이 속속 이뤄지고 있다. 여성들을 타깃으로 하는 뷰티업계 역시 발빠른 대응에 나섰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몸에 값비싼 명품을 휘감기 위해 싸구려 인스턴트 음식을 먹고 다니던 여성들이 끝없는 물질적 탐닉에 지쳤는지 이제 겉치장보다는 내 몸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돈을 들여서라도 몸에 좋은 음식을 즐겨 먹고, 규칙적인 운동을 시작하고, 정신적으로는 스파나 요가, 아로마 테라피 등을 통해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여유와 만족감을 되찾으려 한다. 건강을 지키면서 비만이나 성인병을 예방하는 다이어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각종 비만클리닉 등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으며, 피부관리실과 스파, 두피 케어센터 등에 수백만원씩 투자하는 웰빙족들은 불황에도 여전히 건재하다. 몸에 직접 바르는 화장품업계 역시 웰빙 추세를 의식해 `자연주의`를 최우선으로 꼽는다. 피부에 자극이 없다는 천연 소재를 사용한 제품들과 친환경적 이미지를 풍기는 용기 포장, 일시적인 `결점 가리기`보다는 꾸준한 케어를 통한 `치유`를 내세운 제품들이 각광을 받는다. 사회 전반에 걸친 자연, 건강, 정신적 편안함에 대한 관심은 옷차림에서도 반영된다. 천연 섬유와 편안함을 추구하는 디자인과 색상, 나아가 신체 활동과 건강에도 영향을 미치는 `기능성`소재 개발 등 패션 역시 좀더 쾌적한 삶을 추구하는 수단으로서 어느 때보다 역할이 강화되는 추세다. 물론 뷰티산업을 비롯해 웰빙의 부상과 함께 파이를 늘려가고 있는 웰빙 산업 가운데는 고소득층이 중심이 된 부문이 적잖이 부각된다. 유기농이나 기능성 식음료, 기능성 천연 화장품이나 섬유 제품은 모두 일반 제품보다 평균 20~30%는 비싼 것이 사실이다. `웰빙=고소득 생활 스타일`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제공되는 서비스나 제품은 명품 브랜드의 자리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느낌도 없지 않다. `있는 사람들의 사치`가 아니라 `건강을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의 권리`로 얼마나 깊게 일반 소비자들의 인식에 파고들 수 있을지가 앞으로 모든 웰빙 관련산업이 풀어가야 할 과제라고 할 수 있겠다. <신경립기자 klsi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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