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경제소사/3월12일] 이바르 크루거
권홍우 편집위원
파리 경찰청에 비상이 걸렸다. '성냥왕' 이바르 크루거(Ivar Kreugerㆍ당시 52세)가 1932년 3월12일 시내 중심지의 한 호화 아파트에서 시체로 발견됐기 때문이다. 경찰은 시신 옆의 권총과 유서로 미뤄볼 때 자살이라고 판단했다. 사망 추정시간 오전11시.
정확한 사인규명을 이유로 경찰이 사망사실 발표를 미룬 가운데 한 신문의 특종보도로 '크루거 자살' 소식이 알려진 14일부터 세계 금융시장이 들끓었다. 대공황의 와중에서 미미하게나마 상승세를 이어가던 다우존스공업평균지수가 4개월 만에 반토막 났다.
크루거가 누구기에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세계 최고의 부자였다. 한창때 재산이 요즘 가치로 환산해 1,000억달러를 넘었다. 스웨덴 엔지니어 출신인 그의 성장비결은 금융과 제조업을 결합한 인수전략. 국내외 성냥업체들을 사들여 세계시장의 70% 이상을 휩쓸었다.
크루거는 독점을 우려하는 국가에는 돈을 풀어 반론을 잠재웠다. 크루거가 16개 국가에 내준 대출은 요즘 가치로 350억달러가 넘는다. 위기를 맞은 것은 1929년부터 시작된 대공황. 판매량이 떨어지고 돈줄이 마르며 위법행위가 속속 드러났다. 분식회계와 채권위조가 발각되고 무리하게 조달한 자금의 상환이 다가오자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음모에 의한 타살설도 없지 않았지만 크루거의 자살 이후 불과 6개월 안에 필름왕 이스트만을 포함한 세계적인 기업인 6명이 연달아 자살해 충격을 더했다. 스웨덴에서는 정권이 바뀌었다. 크루거 사후 밝혀진 스캔들에 얽혀 집권 자유당이 물러난 뒤 치러진 1932년 총선을 통해 처음 집권한 사회민주당은 세기말까지 65년간 장기집권을 누렸다. 크루거 사건에 대한 사회적 반성 분위기 속에서 스웨덴이 자랑하는 사회보장제도의 싹이 튼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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