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글로벌 경제가 선진국 주도의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이들 국가에서 임금문제가 뜨거운 이슈로 부각될 전망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높은 실업률 등으로 인해 각국의 실질임금은 정체상태를 면치 못했다. 하지만, 최근 완만하게나마 경제가 살아나자 억눌렸던 근로자들의 임금인상 요구가 한층 거세지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 독일 등에서 최저임금 문제가 정치적 쟁점으로 떠올랐고 일본에서는 내년 초 기업들의 임금인상 결정이 아베노믹스 성공의 열쇠라는 관측이 나온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선진국들이 임금인상을 통해 소비를 늘린다면 세계 경제에도 훈풍이 될 수 있다. 반면, 기업들은 인건비가 오르면 경비절감을 위해 결국 고용을 축소할 수 밖에 없어 임금인상은 오히려 ‘일자리 킬러’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미국 정치쟁점된 최저임금인상=올해 미국에서는 패스트푸드 업계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전국적인 파업을 두 차례 벌였다. 이달 초에는 맥도널드, 버거킹 등 패스트푸드 체인점 종업원들이 “시간당 7.25 달러를 받아서는 먹고 살 수 없다”는 구호를 외치며 미국 100개 도시에서 동맹 파업에 나섰다.
미국의 연방정부차원의 최저임금은 7.25달러로 지난 2009년 이후 4년간 동결됐다. 금융위기 발생 이후 실업률이 10%대까지 치솟고 성장률이 뒷걸음질치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일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성장률이(GDP)가 올 3분기에 3.6%(연율화)까지 오르고 실업률이 7%로 떨어지는 등 경기상황이 호전되면서 몇 년간 묶여있던 최저임금을 올려달라는 요구가 거세다.
일부 지방정부에서는 연방정부보다 앞서서 최저임금을 상향조정하는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뉴욕, 뉴저지 등 5개 주에서 올 들어 최저임금을 연방정부보다 높은 수준으로 올렸으며 메릴랜드, 사우스다코다 등 최소 5개주가 내년에 최저임금 인상을 준비하고 있다. 이는 지방자치단체 정치인들이 유권자의 요구를 의식해 입법을 서두른 것이기도 하지만 저소득 노동자들에 대한 복지지출을 줄이려는 지방정부의 이해와도 맞아떨어진 결과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 이슈를 내년 정치 어젠다로 삼을 태세다. 그는 이달초 워싱턴에서 한 연설에서 “우리시대 최대 도전 과제”고 소득불평등을 지목했다. 그러면서 그는 연방최저임금을 10.10달러까지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현재 7.25달러인 연방최저임금을 앞으로 3년간 매년 95센트씩 올려 10.10달러까지 끌어 올린 후 그 이후에는 물가상승률에 연동시키자는 법안을 제출했다.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내년에는 오바마케어가 아니라 연방 최저임금이 워싱턴 정가의 핵심 논쟁거리가 될 것”이라고 논평했다.
◇대기업 몰아부치는 일본=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최근 역점을 두는 사안은 대기업들의 임금인상이다. 일본정부가 중앙은행을 통해 막대한 돈을 풀어 일본 엔화 값을 떨어뜨려 수출기업들의 가격경쟁력을 뒷받침해주고 있으니 기업들은 수익을 종업원들에게도 나눠주라는 게 그의 논리다. 이는 정치적인 요구이면서 동시에 15년간 계속된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한 중요한 경제적 해법이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아베노믹스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 지을 분수령은 내년 초 기업들의 임금 인상 여부”라고 진단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물가상승을 고려한 일본의 연평균임금은 지난 2000년에서 3만4,291달러에서 2012년 3만4,138달러로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골드만삭스는 경제가 가계소득 증가→소비확대→기업이익 증가→물가상승의 선순환 구조로 돌아서기 위한 고리를 기업들의 임금 인상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내년 4월로 예정된 소비세 인상을 앞두고 국민들의 실질소득이 늘어나지 않으면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경제가 더 깊은 침체에 빠질 가능성을 일본 정부는 우려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독일이 전국단위의 최저임금제도를 도입하기로 결정, 임금 인상의 물꼬를 텄다. 그동안 국제통화기금(IMF)와 유럽연합(EU)은 형편이 나은 독일이 임금을 올리고 소비를 늘려 다른 유럽국가들의 경기침체 탈출을 도와야 한다고 압력을 가해왔다. 그러나 지난 16일부터 독일 아마존 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을 촉구하는 파업에 나서는 등 노동계의 임금인상 목소리가 커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임금인상은 ‘일자리 킬러’”=경기회복기에 접어든 선진국을 중심으로 임금인상 요구가 커지고 있지만 기업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오히려 임금인상으로 고용비용이 증가하면 기업은 비용절감을 위해 고용을 줄일수 밖에 없고 이는 결국 노동자들의 피해로 돌아갈 것이라는 주장이다.
캘리포니아주 상공회의소는 최저임금 인상 법안을 “일자리 킬러”(job-killer)라고 규탄했다. 전미자영업연합(NFIB)의 존 카바텍 캘리포니아지부장은 “고용비용이 늘면 종업원수를 줄이거나 아니면 아예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고 말했다.
전세계시장을 상대로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는 글로벌 제조업체들은 비용을 낮추기 위해 생산기지를 계속 옮기고 있다. 최근 글로벌 기업들은 중국의 인건비가 올라가자 베트남 등 더 낮은 비용의 노동력을 찾아 일자리를 이동시키고 있다.
서비스 기업 역시 인건비 부담이 늘면 인력을 줄이는 자동화를 서두를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미국 타임즈지에 따르면 연방최저임금보다 낮은 시간당 6.25달러에 야간경비를 서는 로봇이 등장했다. 맥도날드 역시 음식생산의 상당부분을 자동화한 상태다. CNBC는 “저임금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지만 최근 기술의 발달은 일자리를 위협할 만큼,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 전세계적으로 총수요가 부족한데다 소득 양극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실질소득 증가를 위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IMF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는 “평균 임금의 30~40% 수준의 최저임금은 소비 확대와 소득불균형 축소에 도움이 된다”는 공동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마틴 펠트슈타인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 기고에서 “최저임금 인상은 저숙련 노동자의 실업률 증가와 상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진다”며 “무작정 최저임금을 올리기보다는 최저임금과 복지수당은 연계하는 등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