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드퍼드의 기적

선수 몸값 1200만원 4부 리그 약팀
위건·아스널·애스턴 빌라 꺾고 잉글랜드 캐피털원컵 결승 진출
결승행 주역은 전직 슈퍼마켓 점원

경기종료 휘슬이 울리자 양팀 선수들이 일제히 머리를 감쌌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애스턴 빌라 선수들은 패배의 충격에, 4부 리그 브래드퍼드시티 선수들은 자신들이 이룬 기적이 믿기지 않아 머리에 손을 얹었다. 브래드퍼드는 4부 리그에서도 10위에 처져 있는 약팀이며 선수들의 몸값은 대부분 1만2,000달러(약 1,200만원)를 넘지 않는다.

'브래드퍼드의 기적'이 세계 축구계를 뒤흔들었다. 브래드퍼드는 23일(이하 한국시간) 잉글랜드 버밍엄의 빌라파크에서 열린 애스턴 빌라와의 캐피털원컵(리그컵) 4강 2차전 원정에서 1대2로 졌다. 하지만 1차전 홈경기에서 3대1로 이겼기 때문에 합계 4대3으로 결승행을 확정했다. 2차전에서 0대1로 뒤지던 후반 10분 헤딩 동점골을 작렬한 제임스 핸슨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슈퍼마켓 점원이었다.

브래드퍼드의 리그컵 결승 진출은 지난 1903년 창단 이래 110년 만에 처음. 6,500여명의 원정 팬들은 그라운드로 쏟아져나올 것처럼 흥분하며 목놓아 응원가를 불렀다. 필 파킨슨 브래드퍼드 감독은 경기 후 "이건 분명 꿈일 것이다. 역사를 새로 써보자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됐다"며 "우리는 웸블리로 간다"고 말했다. 1부 리그인 EPL 팀들과 2~4부 리그 팀들이 총출동한 캐피털원컵에서 브래드퍼드는 EPL 팀들을 잇따라 무너뜨리며 이변의 중심에 섰다. 16강에서는 위건, 8강에서는 아스널, 4강에서는 애스턴 빌라가 희생양이 됐다. 16강부터 4경기 동안 4골만 내주는 촘촘한 수비가 돋보였고 16∙8강 연속 승부차기 승리 등 행운도 뒤따랐다. 브래드퍼드 구단주는 결승 진출에 대한 포상으로 선수단에 라스베이거스 여행을 약속했다.

브래드퍼드의 기적은 진행형이다. 24일 벌어질 스완지시티∙첼시전 승자와 다음달 25일 '축구성지' 런던 웸블리스타디움에서 우승을 다툰다. 잉글랜드에서 4부 리그 팀이 메이저대회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것은 1962년 리그컵 대회 때의 로치데일뿐. 브래드퍼드가 51년 만의 대기록에 도전하는 셈이다. 창단 후 주로 2~4부 리그를 전전했지만 EPL 승격 경험도 있는 브래드퍼드는 1911년 잉글랜드 축구협회(FA)컵 우승이 유일한 메이저 타이틀이다.

브래드퍼드의 결승행은 '잉글랜드판 칼레의 기적'으로도 불릴 만하다. 2000년 프랑스 4부 리그의 유니온 칼레는 정원사∙항구노동자 등 동호회원 수준의 선수 구성으로 FA컵 결승에 진출했다. 이때부터 '칼레의 기적'은 약팀의 반란을 강조하는 수식어로 애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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