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시스템 개조하자] 7부. 성장동력 과학에 답이 있다 <3> ICT 종합전략 세워라

'구글식 CPND 생태계 구축' 조직정비·정책통합 서둘러야
ICT업무 사분오열… 환경변화 대응 어려워
부처 조율·갈등 해결할 컨트롤타워 만들고
규제완화·정보공개로 서비스 경쟁력 키워야

구글과 같은 글로벌 ICT 기업을 키워내기 위해서는 범정부 차원의 ICT 종합전략이 필요하다. 최문기(가운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합동 브리핑실에서 '창조경제 실현계획'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서울경제DB


#. "무인자동차 기술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핵심기술인) 차량 대 차량 통신이나 자동 브레이크 기술적용을 의무화하거나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데이비드 스트릭랜드 미국 고속도로교통안전국(NHTSA) 국장의 말이다. 미국이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 글로벌 주도권을 쥐고 앞서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정부의 적극적 지원 때문이다. 연방정부는 ICT 융합의 결정체인 자동운전 자동차 개발을 위해 법과 제도까지 바꿀 태세다. 주정부도 2011년 6월 네바다주를 시작으로 3곳이 무인자동차 관련법을 만들었고 콜로라도 등 9곳은 심사가 진행 중이다. 구글은 정부지원에 힘입어 5년 내 상용화를 자신한다.

#. 2009년 초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를 방문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전기차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공언했다. 당시 지식경제부는 전기차 연구개발(R&D)을 지원하고 국토해양부는 안전성 검사를, 환경부는 보급을 맡았다. 그러나 불과 2년 만에 관련 기업 가운데 일부는 상장 폐지 되거나 공장 문을 닫았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말로는 육성한다고 했지만 부처별로 관심사나 이해관계가 달라 진행되는 게 없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안전성, 지경부는 성장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환경부는 민간인 판매에 대해 보조금을 주지 않는 등 발목을 잡았다. 그는 "2020년 전기차 시대가 올 거라고 하지만 한치 앞도 안 보인다"고 안타까워했다.

창조경제 아이콘, ICT의 패러다임 변화가 빠르다. 글로벌 ICT 기업들은 핵심 역량을 토대로 콘텐츠(C)와 플랫폼(P), 네트워크(N), 기기(D)를 융합한 CPND 생태계 구축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정은 절박하다. 모바일을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 ICT 생태계에 대응하지 못하면 정부 때문에 발목이 잡힌 제2ㆍ제3의 전기차가 쏟아질 수 밖에 없다. ICT 패러다임 변화를 쫓아갈 수 있는 융합형 ICT 조직체계와 ICT 통합정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사분오열된 ICT 부처를 조율하고 망중립성 논란 등 첨예하게 대립 중인 이해관계자들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조정 기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ICT 인프라 구축을 위한 장기전략 수립과 경쟁력 있는 서비스 개발을 위한 규제완화, 공공정보 공개 등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진형 KAIST 전산학과 교수 겸 소프트웨어정책연구센터 소장은 "이명박 정부 때 정보통신, 방송ㆍ통신ㆍ인터넷, 디지털콘텐츠, 국가정보화 업무 등이 분산되면서 부처 간 갈등이 심해져 글로벌로 확산되던 모바일 스마트 혁명에 대처하는 데 실기했다"며 "급성장하는 인터넷과 디지털 콘텐츠 분야, 소프트웨어 등을 묶을 수 있는 ICT 컨트롤타워와 ICT 통합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계영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미래융합연구실장도 "ICT 산업은 2011년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8.0%, 수출의 24.5%를 차지하는 등 핵심 성장동력"이라며 "주도권을 쥐고 있는 미국을 쫓아가기 위해서는 ICT 융합환경에 맞는 미래전략체계, ICT 국가발전전략 수립이 빨리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터넷 혁명은 세상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세계 석학들은 지금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경계가 허물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이에 대비한 ICT 종합전력도 필요하다. 밥 멧갈프 미국 텍사스오스틴대학 이노베이션학과 교수는 "곧 테라비트(1초에 1조비트 데이터 전송) 시대가 열리면 인터넷을 통해 엄청난 양의 정보가 유통되면서 세상을 나누는 장벽들이 무너질 것"이라며 "모든 것이 연결되는 사물통신 시대에는 나누고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해지는 만큼 변하는 세상에 눈을 열고 준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미 글로벌 ICT 기업들은 경계를 허물기 시작했다. 애플과 구글, 아마존과 페이스북 등은 국경을 넘나들며 C(콘텐츠)-P(플랫폼)-N(네트워크)-D(디바이스) 생태계를 구축 중이다. 구글은 지금까지 130여개의 기업을 인수했다. 14조원을 들여 모토롤라 모바일까지 사들였고 아마존도 태블릿PC에 이어 스마트폰 출시를 서두르고 있다.

소비자들을 위한 서비스도 경계가 없어졌다. 제이슨 스페로 구글 글로벌모바일솔루션 총괄은 "구글은 '끊김이 없어야 한다. 모든 것을 포함해야 한다. 모바일에 적합해야 한다'는 광고의 3원칙이 있다"며 "피부와 눈, 귀와 같은 기능을 갖춘 모바일과 개인의 위치정보와 접목시켜 모든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내 기업들은 이구동성으로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글로벌 ICT 생태계에 맞춘 ICT 조직체계와 통합정책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 IT 업체 대표는 "여러 부처가 관여된 업무는 어느 부처의 일도 아니라고 보면 된다"며 "한국에서는 애플처럼 콘텐츠에서 플랫폼, 기기와 네트워크를 아우르는 비즈니스 모델도 불가능하고 구글처럼 경계를 넘나드는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것은 더더욱 힘들다"고 전했다. 그는"이명박 정부에서 ICT 콘텐츠 업무가 옛 문화체육관광부(콘텐츠)와 방송통신위원회(네트워크), 지식경제부(SW 지원), 행정안전부(교육 콘텐츠) 등으로 쪼개지면서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면서 경쟁만 하고 갈등만 커졌다"고 덧붙였다.

최계영 KISDI 실장은 "ICT 관련 업무가 쪼개지면 어느 부처도 ICT를 최우선 순위에 두지 않기 때문에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힘들다"며 "분산된 조직과 정책은 전문성과 관심도가 떨어져 급변하는 융합적 ICT 환경에 대응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여러 나라들이 ICT 기능을 일원화하는 집중형 추진체계로 개편했다. 미국은 대통령실 소속 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대통령정보자문위원회가 정책을 주도하고 연방정보화총괄책임자(CIO) 협의회가 업무를 조정한다. 중국은 2008년 공업식신화부를 만들어 4개 부처로 분산됐던 정보화 업무를 통합했다.

우리나라도 미래부로 ICT 관련 업무를 모으는 데는 실패했지만 국회가 나서서 '정보통신 진흥 및 융합 활성화 등에 관한 특별법안', 이른바 ICT 통합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통합법에는 신규ㆍ융합 서비스 활성화를 위해 '허용 원칙ㆍ금지 예외'를 기본원리로 하는 네거티브 시스템 원칙을 명시했고 미래부 장관이 3년 단위로 정보통신 진흥 및 활성화 실행계획을 수립하도록 했다. 또 '정보통신 전략위원회'를 설치해 범부처 간 정보통신 정책을 조정하고 '정보통신 활성화 추진단'을 만드는 방안이 제시됐다.

한 대기업 부사장은 "남이 작곡해놓은 것을 열심히 연주만 하던 때에서 우리가 스스로 작곡, 창작을 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며 "변하는 ICT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법ㆍ제도 개선과 ICT를 육성하겠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마스터플랜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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