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익선(多多益善)이란 말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아시는 대로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뜻입니다. 이와 반대되는 사자성어로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 있습니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만 못하다는 의미죠. 모두 일리있는 말 이지만 기자들은 전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자가 읽는 ‘텍스트’의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기사가 나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
안녕하세요? (과장 조금 보태어) 아침에 눈 뜨자마자 ‘신문’부터 찾아 헤매는 지민구 기자입니다. 최근 들어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집 현관문 앞에 놓인 신문 찾으러 가는 일조차 번거롭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조간 신문 1면을 즉각 확인하지 않으면 출근 준비를 하면서도 마음 한 켠이 찜찜합니다. 오늘의 ‘톱 뉴스’가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혹시 다른 매체에서 특종보도가 나오지 않았나 하는 불안감 때문에 잠이 덜 깬 상태에서도 신문부터 확인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 오전 4~5시만 되면 보급소에서 직접 신문을 찾아 읽고 하루를 시작한다는 몇몇 국회의원들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한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여러 물리적 한계로 인해 집으로 배달 받아 보는 신문은 두 개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기자실로 출근해서는 10여개 정도의 일간지를 정치면 중심으로 정독합니다. 많은 기사를 읽다 보면 내용이 비슷비슷한 게 많지만 제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 보도된 것을 발견한 뒤 ‘탁’하고 무릎을 칠 때도 많습니다. 아울러 제가 쓴 기사와 다른 선배기자의 보도를 비교해보면 느끼는 점이 많습니다. 같은 사안이라도 쓰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내용이 180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죠. 또한 기자의 취재 능력에 따라 기사에 투입되는 ‘팩트의 양’도 천차만별입니다.
물론 그저 읽기만 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보기에 잘 쓴 기사는 자필로 한 번씩 베껴 쓰곤 합니다. 이른바 ‘필사(筆寫)’ 작업인데, 선배기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기사 작성 능력을 키우는 데 이만큼 좋은 훈련방법이 없다고 하네요. 가장 단순하면서도 효율적인 방식이랄까요? 실제로 기자 출신의 한 국회의원은 초년병 시절에 선배기자들의 기사를 몇 편씩 베껴 쓰고 다양한 표현들을 수첩에 기록하는 등의 노력을 수년간 계속한 뒤에야 마침내 ‘기사다운 기사’를 쓸 수 있었다고 조언하더군요.
읽고, 베끼는 작업이 축적된 뒤에는 ‘창조’를 해내야겠죠. 기자는 결국 ‘좋은 기사’를 통해 독자들로부터 인정 받을 수 있는 것이니 말이에요. 물론 선배기자들을 뛰어넘을 정도로 좋은 기사를 쓰는 게 금세 될 일은 아니지만 매일매일 꾸준히 기사를 읽고, 베끼면서 ‘나만의 기사’를 궁리하다 보면 독자들로부터 인정 받는 좋은 보도를 할 수 있지 않을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