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가을이 오면 멜로풍 영화가 화면을 뒤덮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 스크린은 액션과 코미디에게 사시사철을 모두 내어준 지 오래다. 그만큼 영화팬들은 계절을 잊어버렸으며, 버린 것이 비단 계절만은 아닌 것 같다.
10일 개봉하는 일본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는 과거를 간직한 사람들을 위한 작품이다. 현재보다 그 어느 시점에 대한 행복이 컸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 혹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음을 깨닫게 될 이를 위한 영화다.
1997년 일본에서 발표된 동명 소설이 원작. 개봉 당시 일본에서 1,0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맞았고 1년간 장기 상영되는 기록도 남겼다. 주연을 맡은 배우는 TV스타 다케노우치 유타카와 홍콩 여배우 천후이린.
1994년. 화가를 꿈꾸던 남자 준세이가 이탈리아 피렌체로 날아온다. 플로렌스라고도 불리는 이 도시는 메디치 가문과 함께 르네상스의 태동을 열었던 땅. 우리에게야 그 시절 회화의 보고 같은 곳이지만 어쩔 수 없이 과거의 묻혀 미래를 잃어버린 도시다. 관광과 미술품 복원만이 주 사업인 도시에서 남자는 `예술품 복원`으로 인생의 향방마저 바꾼다.
1997년. 준세이가 옛 연인의 소식을 듣는다. 준세이는 늘 타던 삐걱거리는 자전거를 버리고 오토바이에 몸을 실은 채 밀라노로 향한다. 옛 연인 아오이와의 가슴 아픈 해후 이후 남자는 도망치듯 일본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숨어든 곳도 그녀와의 추억이 가득했던 옛 화실. 스승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피렌체로 돌아간 남자는 팽개쳤던 복원사업에 다시 몰두하고, 한편으론 이별 전 아오이와 나눈 약속의 실현을 기다린다.
때마침 내리는 비나 추억의 첼로연주처럼 영화는 물론 연애물의 전형을 답습한다. 하지만 구태여 서로를 찾지 않고, 사랑이 있는 한 옛 연인의 편지를 읽지 않는 남녀의 `용감함`은 우리 내부에 자리한 치졸하지 않은 감성의 공간을 새삼 확인시켜 준다.
<김희원기자 heew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