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보다 비전" 개발시대 창업자 빼닮은 '김승연식 오너경영'

■ 한화의 질주… 비결은
M&A·이라크·태양광 등 핵심사업 내부 반대에도 뚝심으로 밀어붙여
빅딜 4사 30일 주총서 사명 변경… 조직문화 융합 등 주요과제 남아



지난 2010년 초,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태양광 시장 진출을 논의하기 위해 주요 임원들을 소집했다. 회의 자리에서는 중국의 한 태양광 기업을 사들여 그룹의 성장동력을 마련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당시 상당수 임원들은 '무리'라는 반응을 보였다. 전 세계적으로도 태양광 산업이 아직 초기 단계인데다 생소한 시장에 뛰어드는 데 따른 리스크가 만만치 않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 회장은 태양광이 미래 주요산업이라는 자신의 판단을 믿기로 결심했고 같은 해 8월 중국 솔라펀파워홀딩스를 인수해 '한화솔라원'을 설립하며 태양광 시장에 진출했다.

한화그룹 고위관계자는 "김 회장은 요즘 경영인들보다 1세대 오너들과 더 비슷하다"며 "리스크보다는 비전을 더 보고 밀어붙이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중장기적 목표를 향해 뚝심 있게 전진하는 스타일이 국내 1세대 기업인들과 닮았다는 이야기다.

김 회장은 올 초 한화솔라원과 한화큐셀을 합쳐 전 세계 1위 태양광 업체를 탄생시켰다.

태양광뿐이 아니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김 회장의 경영복귀 이후 삼성테크윈·삼성탈레스·삼성종합화학·삼성토탈 인수라는 약 2조원 규모의 빅딜을 발표했다. 신도시 건설사업이 진행 중인 이라크 비스마야에서는 21억달러 규모의 사회기반시설 건설 사업을 추가로 수주했다.

한화는 이처럼 굵직한 소식을 잇따라 발표하는 와중에 한화폴리드리머의 일부 사업부를 매각하고 독일 자동차부품사인 하이코스틱스를 인수하는 등의 사업개편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한화그룹이 이처럼 최대 전성기를 맞은 데 대해 "오너의 거침없는 성장전략이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한다. 최근 수년간 한화그룹은 정체상태에 빠져 있었다. 당장 버틸 수는 있었지만 화학·방산 부문에서는 중국 후발주자들의 추격이 거센데다 태양광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전략이 필요했다. 그룹의 10년, 20년 후를 대비한 체질개선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김 회장은 이를 대규모 인수합병(M&A)과 선택과 집중 원칙에 따른 사업개편으로 푼다는 결단을 내렸다. 장기 비전과 추진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전문경영인이었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한화 관계자는 "김 회장은 이를테면 선이 굵은 스타일"이라며 "굵직한 방침을 정하되 구체적인 진행은 그룹사별 최고경영자(CEO)와 실무진에 맡기고 된다 싶으면 뚝심 있게 밀어붙인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과거에도 비슷한 면모를 보여왔다.

1982년 전 세계적인 석유화학 업종 불황에도 불구하고 성장성에 '올인'해 한화케미칼(당시 한양화학, 한국다우케미칼)을 인수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화는 한화케미칼을 인수하면서 국내 10대그룹에 편입될 수 있었다. 2002년 인수한 한화생명(옛 대한생명)은 현재 한화그룹 전체 매출의 50%에 달하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2012년에 인수한 한화큐셀은 올 초 한화솔라원과의 합병에 힘입어 세계 1위 태양광 기업으로 거듭났다.

핵심임원과 그룹 성장에 기여하고 있는 직원들에게 신뢰와 보상을 아끼지 않는 성향은 빠른 조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됐다.

일례로 김 회장은 지난해 경영복귀 직전 금춘수 전 한화차이나 사장을 그룹 컨트롤타워인 경영기획실장(사장)으로 임명했다. 그룹 초대 경영기획실장을 지내는 등 자신의 뜻을 가장 잘 아는 금 사장을 다시 불러들인 것이다. 지난해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현장을 방문했을 때는 현지에서 구할 방도가 없는 광어회 600인분을 전용기로 공수하는 등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는 데 공을 들이기도 했다.

삼성 4개사 인수와 한화큐셀·한화솔라원 합병 등으로 재차 도약의 기반을 마련한 김 회장은 앞으로 '시너지'라는 키워드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한화케미칼은 삼성종합화학·삼성토탈 인수로 석유화학 매출 18조원, 국내 1위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규모만으로는 미국·일본 등의 선진 석유화학 업체들과 경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태양광의 경우 단순한 셀·모듈 생산뿐 아니라 발전소 건설·운영을 통합한 패키지 사업으로 영역을 확대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 있다.

이밖에 오는 30일 '한화종합화학' '한화토탈'로 이름을 바꿀 삼성종합화학·삼성토탈을 비롯해 삼성테크윈·삼성탈레스와의 조직문화 융합도 중대한 과제다. 이날 양사는 임시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열어 사명변경과 신임 대표 선출 등의 안건을 논의할 예정이다. 현재 한화그룹에서 석유화학 부문 인수후합병(PMI) 태스크포스를 지휘하고 있는 김희철 부사장이 양사 대표직을 모두 맡을 가능성이 유력하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