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이기·노사갈등이 개혁 발목
한국전력 노동조합의 파업은 일단 유보됐지만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해외투자가나 국민들의 시각은 한마디로 싸늘하다.
정부는 98년 108개 공기업에 대해 민영화 계획을 확정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국정교과서ㆍ한국종합기술금융 등 규모가 작은 22곳을 민영화-통폐합한 것을 제외하면 깔끔하게 처리한 기업은 하나도 없다.
경제 전문가들은 그런 점에서 "한국전력의 구조개편은 현정부가 추진중인 공공부문 개혁의 성패를 가늠할 핵심이자 상징"이라면서 "노조반발로 계획이 지체되거나 무산될 경우 정부의 개혁정책은 물론 경제성장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서울대 경영학과의 한 교수는 "한전의 자산규모는 63조원이나 되지만 32조원에 달하는 부채로 연2조 이상의 순이익을 내면서도 2조6,000억원의 이자조차 부담하지 못한다"면서 "결국 국방비의 3배나 되는 27조원의 예산을 퍼붓고도 매년 5% 이상의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한 것은 비효율적 경영의 극치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김대중 정부가 처음 기업-금융-공공-노사-공공 등 4대부문의 개혁을 제시했을 때 국민들은 많은 변화를 기대했지만 공공부문의 경우 개혁은커녕 부도덕한 경영진과 노조의 이기주의만 키워 왔다"면서 "공공부문의 개혁을 미룰 경우 우리경제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승훈교수(서울대ㆍ경제학)는 "전력산업 민영화는 이미 40여개국에서 시도, 효과를 검증받았다"면서 "구조조정을 하면 엄청난 혼란이 올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공기업 민영화가 국부유출을 초래한다는 노조측의 주장도 설득력이 약하다는 의견이 많이 나오고 있다. 정갑영교수(연세대ㆍ경제학)는 "전력산업의 특징상 외국인이 투자해도 근본적으로 국부유출 문제가 생길 수 없다"며 "발전소 건설자금을 외국에서 차입하면 국민들에게 원금과 이자상환 부담을 가중시켜 오히려 국부유출을 낳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의 구조조정 방침에 노동계가 주장하는 핵심은 하나다. 구조조정과 별개로 예상되는 실업률을 파악, 사업장별로 적절한 대책기구를 만들고 '특단의 대책'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동계는 정부의 '근로자 죽이기 정책'에 맞서 보다 강력한 투쟁만이 살길이라는 논리로 무장하고 있다. 손낙구 민주노총 교육선전실장은 "양대 노총은 앞으로 정부의 정책결정 과정에서 노동자의 의견을 적극 개진하고, 산별 노조의 중앙교섭을 통해 일정한 몫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획예산처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노조에 밀려 공기업 구조조정을 제대로 못한다면 기업ㆍ금융구조 조정과정에서 발생할 민간부문 실업자들의 반발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느냐"면서 "정부 개혁정책은 계획대로 밀고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우리사회 전반에 걸쳐 이익집단이나 노조의 집단행동이 개혁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상황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정부가 내년 2월까지 구조조정을 마무리 하는데 핵심 요소로 '노조문제'를 꼽고 있다. '경제 100년'을 바라보는 노동계의 인식이나 시각변화 없이는 어떠한 개혁정책도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성근교수(연세대ㆍ경제학)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조의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원칙에 기반을 둔 개혁뿐"이라며 "국내외 시장 참여자들은 구조조정을 지휘하는 정부가 얼마나 단기실적을 많이 올리는가 보다 얼마나 흔들리지 않고 일관성을 유지하는가를 더 주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상영기자
입력시간 2000/11/26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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